윤서(가명)의 부모는 빚이 많았다. 당장 둘이 일하지 않으면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이 분유 값을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거웠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2주 남짓 남겨두고 윤서와 함께 서울 관악구의 베이비박스를 찾았다. 엄마는 윤서와 함께 성탄절을 보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편지에 “크리스마스에는 아기 옷을 사서 가겠다”고 약속했다. 아빠는 “윤서가 글을 깨쳐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오겠다”며 “그때 함께 행복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꼭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편지에서 연신 되풀이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엄마들이 남긴 편지는 가난과 눈물로 젖어 있다. 병원비, 생활비가 없어 아이를 보내야 하는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하다.
재영(가명)이는 아빠와 함께 베이비박스에 왔다. 엄마는 재영이를 두고 떠났다. 아빠는 혼자서라도 딸을 키우려 했다. 미혼부인 아빠는 집에서 쫓겨나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생활도 빠듯한데 재영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며 태반을 먹어버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아이 병원비만 100만원이 넘었다. 아기용품까지 사고 나니 아빠는 수중에 돈이 떨어졌다.
정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출생신고 없이 수급자 신청을 할 수 없었다. 친부가 출생 신고를 하려면 법정에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베이비박스를 택했다. 지난해 5월 아빠는 재영이를 베이비박스에 데려다 놓았다. 그는 “도움을 주는 곳이 한 곳도 없어 염치 불구하고 아이를 맡긴다”며 “입양 보내지 말고 1∼2년만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선민(가명)이 엄마는 원룸 화장실에서 세상이 모르게 선민이를 낳았다. 모든 게 서툴기만 한 미혼모였다. 갓 태어난 아기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젖을 물리는 방법조차 몰라 초유를 먹이지 못했다. 엄마가 일을 나가면 선민이는 혼자 남아 굶었다.
어느 날은 13시간을 굶으며 엄마가 올 때까지 울기도 했다. 감기가 걸려 얼굴에 열꽃이 펴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기저귀를 제시간에 갈아주지 못해 엉덩이 피부도 상했다. 선민이는 2013년 7월 베이비박스에 왔다. 엄마는 선민이와 함께 남겨둔 편지에서 “아이를 병원에 꼭 데려가 달라”고 당부했다. 선민이의 행복도 빌었다.
선민이보다 세 달 늦게 베이비박스에 온 하나(가명)도 형편이 안 돼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하나의 아빠는 사업에 실패하자 엄마와 첫째 아이를 버리고 1년 가까이 잠적했다. 혼자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엄마는 두 아이를 다 책임질 수 없었다. 엄마는 “정부에서 조금만 도움을 줬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한 둘째를 제 손으로 보낸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보낸 것이 아니다”며 끝까지 죄스러워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