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일반인들도 성경을 사서삼경처럼 친숙하게 읽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일반인들에게 예수의 존재를 실감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올해 희수(喜壽)를 맞은 은퇴 장로에게서 노후대책 같은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아직도 ‘복음의 진수’를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성경과 예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전할 수 있을지, 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쏟아 부을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최근 만난 현길언(77·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얘기다.
1980년 소설 ‘성 무너지는 소리’로 등단한 그는 1990년 ‘사제와 제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까지 30여편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계간지 ‘본질과 현상’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기도 한 그는 또 다른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다.
“마태·마가·누가·요한 등 4복음서 읽기를 통해 예수를 알아가는 ‘예수는 누구인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주변인’으로 탄생한 예수부터 세상 권력을 거부한 ‘비권력자’ 예수, 예수를 전한 사람들, 십자가와 부활 등 12가지 주제로 다뤄보려 해요.”
2시간 가까이 그는 성경과 더불어 예수를 알아가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앙에 있어서 지식이 동반되지 않은 행동(또는 행위)은 위험합니다. 생각에 근거한 행동이 아니면 진정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데,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죠.”
저마다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도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체계적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 욕망과 권력에 유혹당하고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권력’을 얘기하면서 그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지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는 곧 사회에 대한 교회의 ‘파워’, 즉 권력화를 지향하고 있는 거랑 다르지 않습니다. 이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는 비권력화를 철저히 지향했고 실천하신 분이잖아요.”
비신자 가정 출신인 현 장로는 제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혼자 들락거린 동네 교회가 있었는데 고 이원근 장로가 세운 남원교회였다. 이 장로는 이영훈(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조부로 이북에서 월남해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이 교회를 세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주영락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1980년대 말 상경해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충신교회를 줄곧 섬겼다.
그에겐 “상당히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소개하는 간증 거리가 하나 있다.
“40년 전쯤 제주의 고등학교 교사였을 때 위장병을 앓았어요. 전주예수병원 순회진료단이 들렀는데, 담당 의사가 ‘나중에 시간 나면 정밀 검사를 한번 받으러 오라’고 해서 몇 달 뒤 전주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검진을 받았어요. 위궤양 같은 거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위를 3분의 2정도 제거했지요. 그런데 2년 정도 지나서 그게 위암 수술이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당시엔 위내시경도 없었을 때였는데…. 모든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됐고 제 마음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어요. 저는 그 과정 전체가 참 신비로워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이데올로기의 비극으로 꼽히는 ‘제주 4·3사건’은 현 장로의 가치관과 그의 작품 속에도 오롯이 투영돼 있다.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개인의 진실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느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섬의 반란’ ‘정치권력과 역사왜곡’ 같은 그의 저서에도 집단 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 개인의 진실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다.
그는 다시 성경 이야기로 돌아갔다.
“역사의 흐름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닌, 수많은 보잘 것 없는 인생들에 의해 이뤄져 왔습니다. 성경을 펼쳐 봐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는 당시 변두리 민족인 이스라엘을 통해, 그 안에서도 주변적 인물들을 쓰셔서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그 속에는 남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도 등장합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이 갖고 있는 몫과 의미를 뭇사람들에게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