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득, 후드득.’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소나기가 되어 캄보디아 캄봇주 쩨이스나 초등학교 운동장을 적셨다. 대형 천막 아래 모인 아이들은 이런 ‘스콜’이 익숙해 보였다. 20분 넘게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 훈시에 딴짓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내빈의 축사와 현지 한국기업이 주는 장학금 전달식이 끝나자 먹구름 가득했던 날씨는 시치미를 뚝 뗀 듯 파란 하늘을 드러냈다. 왜 아무도 비를 걱정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과수를 재배하는 한국의 농업 전문기업 에이퍼플은 2년 전 후원자들과 함께 국제 아동절인 6월 1일, 쩨이스나 초등학교의 첫 운동회를 열어주었다. 올해는 지난 1일이 캄보디아 지방선거 기간이어서 7일 뒤늦게 세 번째 운동회를 개최했다. 선생님이나 학생들, 한국기업, 자원봉사자들 모두 우왕좌왕했던 첫해와 달리 이제는 한국의 여느 운동회 못지않게 내용도 다양해지고 짜임새도 갖춰졌다.
운동회에는 아이들은 물론 상급학교에 진학한 언니와 오빠, 학부모까지 모두 참여한다. 운동회가 커다란 마을 잔치로 변한 셈이다. 학생회장인 뎁 미아미아(12)양은 “1년 내내 운동회만 기다렸다. 너무 기대된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엉덩이로 풍선 터뜨리기, 입에 숟가락 물고 탁구공 옮기기, 쌀 부대에 들어가 사탕 물어오기 등 게임이 진행될수록 응원소리도, 웃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지난해에 이어 진행된 보물찾기는 눈치 빠른 어린이들이 보물 쪽지를 감추는 진행자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바람에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학교 입구 그늘 아래에는 사탕수수 주스, 잔치국수, 만두 등 소박한 먹거리 장터가 펼쳐졌다. 마치 1960∼70년대 한국의 시골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고기를 듬뿍 넣은 썸러까리(캄보디아 전통카레)의 향기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귀를 간지럽혔다. 상품으로 받은 크레파스와 노트, 비눗방울을 손에 쥔 아이들의 얼굴에는 때 묻지 않은 ‘행복’이 번졌다.
쩨이스나 마을은 캄보디아에서도 오지마을로 대부분 주민이 벼농사나 인근 농장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전교생이 255명인 쩨이스나 초등학교는 무상교육이라고는 하지만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도 집안일을 돕기 위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가난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이 지역 아이들에게 한국의 후원자들이 지원하는 장학금과 도서, 학용품 등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용기이다.
행사를 주관한 에이퍼플 정승배 현지 법인장은 “모든 교실에 선풍기를 설치해준 후원단체, 미끄럼틀과 그네를 선물해주신 기업, 500명분 빵과 식사비용을 제공한 업체, 전교생에게 예쁜 옷을 후원한 기업, 학용품·장난감·선크림을 제공해준 기업 등 나눔과 후원을 통해 올해 역시 멋진 축제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회사는 학생들과 마을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판 쏘반나라 교장은 “한국기업의 후원으로 컴퓨터와 한글 교육, 장학금 지원이 이뤄지면서 학생들의 향학열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날 운동회는 나눔의 소중함을 아는 한국기업과 바쁜 일상을 미뤄두고 참여한 봉사자들, 현지 어린이들과 학부모, 주민들 모두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감사의 축제였다.
캄봇주(캄보디아)=글·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