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대신 대치다. 역대 정권 초반에 늘 봐왔던 풍경이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갓 출범한 정부들은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마음먹은 대로 고위공직 인선을 서두르게 마련이었다. 반면 야당은 인사청문 과정을 통해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들춰내며 새 정부를 공격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대치 정국의 일차 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인사 난맥이다. 흠결 없는 인물은 정말 없는 것인지, 조각(組閣) 과정의 잡음은 문재인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현 정부의 인사는 보은·코드 중시, 도덕성 경시로 압축할 수 있다. 검찰, 군, 국정원, 재벌 등 온갖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려면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이 관련 부처에 포진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보은·코드는 그다지 문제 삼을 소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들의 도덕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개혁을 선도할 만한 자격을 갖췄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되레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을 우롱한 전력이 드러나 법무장관 후보자가 낙마함으로써 검찰 개혁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국방·교육·노동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후보자들도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이미 상처를 꽤 입었다. 이들이 그대로 임명되면 대놓고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개혁의 선봉에 설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청와대의 국회관(觀)이다. 종전에도 그랬듯, 현 청와대 역시 국회를 진정한 국정의 동반자로 예우하는 것 같지 않다. 과도한 공세를 퍼붓는 야당 탓도 있을 테지만 국회의 다수인 야당이 반대해도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임명장을 주고, ‘국회 청문회는 참고용’이라고 말한 건 부적절했다. 과하게 해석하면, 국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건 말건 밀어붙이겠다는 의미 아닌가. 통상 ‘민의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국회를 국민과 분리하고, 나아가 국민보다 못한 곳쯤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도 과거 정권 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작금의 청(靑)-야(野) 대립에는 감정싸움 양상마저 가미돼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안, 정부조직법 개정안,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통과마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시대에는 통합·상생의 정치가 구현될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쯤에서 많은 국민들이 찬사를 보냈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달 25일 열린 문 대통령 주재 첫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참모들 의무”라고 했다.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 (언론에) 함께 공개돼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받아쓰기·미리 결론내기·계급장이 없는 3무(無) 회의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종 현안에 대한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청문 정국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면서 이런 다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참모들이 ‘이견 제시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부터 아리송하다.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인사 난국 돌파 방안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는데, 야당에 밀려선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걸까. 청와대가 양보카드를 들고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혀 없었던 걸까. 대통령 의지가 강해 참모들은 받아쓰기 하고, 계급장 있는 회의로 변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견 경청은 대치 정국의 출구 마련은 물론 개혁 추진의 필수조건이다. 개혁을 완수하려면 포용과 배려의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회의에서 참모들이 이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해야 한다. ‘예스맨’만 있고 ‘노맨’은 없는 정부의 앞날이 어떠했는가는 현 청와대 참모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