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선(53) 세한대 경찰소방대학장은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이다. 평생 경찰관으로 살아왔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크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했다. 오죽하면 ‘당신이 예수님이야?’라는 조롱을 달고 살았을까.
충남 당진 순성면 출신인 정 학장은 뼛속까지 경찰이었다. 경찰대 3기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서대문경찰서장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경찰청 수사국장에 올랐다. 고속도로 질주하듯 승승장구했다. 충남·대전·경기경찰청장, 경찰교육원장을 지낸 뒤 지난해 12월 경기남부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복을 벗었다.
경찰관 시절엔 공직자윤리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크리스천임을 적극 알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이임식 때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여러분, 전 크리스천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니 저 어땠습니까? 제가 보여드린 삶이 괜찮았습니까? 그럼 교회 나가십시오. 예수님 믿으세요.”
그러면 반응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미웠는데 이젠 예뻐 보여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동안 잘 버텼는데 청장님마저 교회 가라 하시니 머리가 복잡합니다”는 호소였다. 마지막은 “저 지난주부터 교회 나갑니다”는 문자였다.
퇴임 무렵 어느 날 부하 간부가 “청장님을 사람들이 ‘갓용선’이라고 부릅니다”고 귀띔했다. 정 학장은 신성모독이라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다신 하지 말라”고 꾸짖었다.
그의 신앙심은 어머니에게서 내려왔다. 모친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구걸하는 걸인에게 밥상머리를 아예 내줄 정도로 사랑이 넘쳤다. 늘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지위가 높을수록 어려운 사람을 돌봐라. 조금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해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때마다 ‘네, 꼭 그럴게요’라고 대답하고 손을 잡아드리곤 했죠.”
정 학장은 지난 4월 30년 경찰생활을 돌아보며 자서전 ‘낯선 섬김’을 펴냈다. 책에는 어린이와 노약자, 장애인, 탈북민, 결혼이주여성, 범죄 피해자들 등 사회적 약자를 섬기려고 노력한 삶이 담겨 있다. 경찰관으로서,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 학장의 고민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머리에서 “예수님 따라 사는 게 항상 박수 받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게 세상이치”라며 “잠시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내 숙명”이라고 밝혔다. 책은 경찰관 지망생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나온 지 4개월 만에 4쇄에 돌입했다.
정 학장은 9000명 넘는 팔로우를 거느린 ‘페이스북 스타’이기도 하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가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크리스천의 삶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페이스북은 일기 쓰듯 올려요. 하루 일을 정리하거나 간단한 느낌을 적죠. 제가 가정과 직장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하죠. 그러면 제 페친들도 그렇게 살려고 할 테니까요.”
그의 페이스북에는 존경과 감사, 칭찬과 감동이 쏟아진다. 정 학장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페이스북 글을 보고 감동했다는 사연이 넘친다. 7일 만난 그에게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꼽아달라고 했다. 정 학장은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마음을 굳건히 지키는 것, 바로 그게 진짜 용기입니다.”
글=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