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가 있다. 이렇듯 빈대떡은 서민음식이다. 옛날에도 그랬다.
빈대떡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빈자들의 떡, 곧 ‘빈자떡’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예부터 녹두는 빈농들이 심었던 작물이다. 메마른 땅에서 비료 없이도 잘 자라 산비탈이나 논밭 가장자리나 모퉁이를 이용해 키울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콩에 비해 생육기간이 짧아 빨리 먹을 수 있었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리 수확 뒤 쌀 추수 때까지 버티는 것도 큰 문제였다. 녹두는 보리 수확 뒤 곧장 씨를 뿌릴 수 있어 간작은 물론 다른 작물과 혼작도 가능했다.
하지만 녹두는 다른 콩들과 달리 일시 수확이 어려웠다. 익으면 꼬투리가 벌어져 콩들이 튕겨나가기 때문에 익는 대로 나누어 수확해 햇볕에 말려 일일이 손으로 까야 했다. 일손이 많이 가 논마지기깨나 있는 농민들은 녹두 재배를 꺼렸다. 그렇다 보니 녹두 재배는 가난한 소작농들 몫이었다.
녹두는 빈민들을 위한 구황작물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겨울까지 몇 번이고 수확할 수 있어서 산에서 캐낸 칡가루와 섞어 면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당면 재료로도 쓰였다.
또 녹두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녹두부침개다.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겨낸 뒤 이를 갈아 여기에 녹두를 싹 틔운 숙주나물을 넣고 돼지기름에 지져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면 거지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면 세도가들이 녹두부침개 곧 빈자떡(貧者떡)을 만들어 거지들에게 “어느 댁의 적선이오” 하면서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그 뒤 ‘손님을 대접하는 떡’이라 하여 빈대떡(賓待떡)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