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위치한 한국뉴욕주립대는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두루 갖춘 국내 최초의 미국 대학교다. 이 학교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한국인 김춘호(61) 총장. 지난 17일 인터뷰를 하러 김 총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선한 사마리아인을 키우는 한국뉴욕주립대 김춘호’라고 적힌 액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의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문구다. 그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등 ‘세상의 성공’으로 학교의 성패를 평가받고 싶지 않다”며 “졸업생이 올바른 목적을 갖고 세상에서 올바른 가치를 생산해내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서강대학교 3학년 때 친구에게 이끌려 처음 교회에 갔다. 젊은 공대생의 눈에 부활과 사후 세계를 말하는 기독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날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지금의 아내 이정준(61)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이후 믿음 없이 교회에 다니면서 이씨와 교제하게 됐다. 결혼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 유학 중에도 아내를 따라 한인교회를 다니며 11년간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생활했다.
박사학위 취득 뒤 귀국, 대덕연구단지에서 한국동력자원연구소 연구원으로 지냈다. 1991년 우연히 성경모임에서 장경동(대전 중문침례교회)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를 듣고 회심했다. 김 총장은 “그날 성령님이 나를 ‘강타하셨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신앙을 가진 뒤 고교 시절 시작한 술과 담배를 바로 끊자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다”며 웃었다. 그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외국 과학자와 유학생을 섬기는 과학기술자선교회를 만드는 등 ‘사회 선교사’로 지냈다.
김 총장은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을 3연임한 뒤 2008년 건국대 부총장으로 부임, 교육계에 첫발을 들였다. 그는 “부총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청년들이 꿈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가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1년 초대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취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길이었다. 그는 “평생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미련한 나를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나를 택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 주님이 이끌어주신 것 같다”고 했다. 연구원에서 행정가로, 교육자이자 리더로 때마다 자리를 옮기며 필요한 자질을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취임하면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실력자, 인성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이로 키우자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무엇보다 거리에 쓰러진 낯선 이를 위해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한 사마리아인처럼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찾는 학생들로 교육시키려 한다.
한국뉴욕주립대 신입생들은 주 4시간 동안 인성 관련 교양수업을 필수로 이수한다. 김 총장은 “그 수업을 통해 이제 막 성인이 된 학생에게 삶의 목적을 고민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4학년생에게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과제도 내준다.
한국뉴욕주립대는 1∼3학년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캠퍼스와 기숙사에서 음주와 흡연은 금지다. 규정이 매우 엄격해 음주하다 정학처분을 받은 학생도 있다. 김 총장은 “학생을 규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라며 “처벌 받는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처벌의 이유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교회는 줄어가는 다음세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육 일선에 있는 김 총장에게 캠퍼스 선교의 방향을 물었다. 김 총장은 “선교 단체 통합 예배 등 선교단체간의 꾸준한 교류를 통해 힘을 합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국대 부총장 시절 실제로 학교 교직원 교수 등으로 분리돼있는 선교단체 모임을 통합시키려고 애썼다”며 “대학교 선교단체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너나할 것 없이 서로가 가진 노하우와 정보를 가지고 전략을 함께 세우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