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회 개·폐회식 등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에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 산악지대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평창은 볼거리도 많다. 남한강 상류인 동강이 사행천으로 흐르며 장엄한 광경을 펼쳐놓는다. 동강 중류에 속하는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서 볼 수 있다.
미탄면소재지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백운리 쪽으로 향하다 물길을 따라 우회전해 따라가면 민물고기생태관이 들어서 있는 마하리 어름치마을에 닿는다. 이곳에서 길은 동강을 바짝 옆에 붙이고 달린다. 시멘트로 잘 포장돼 있다. 길옆 강변에 매어져 있는 줄배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마하리 문희마을 뒤에 솟아 있는 백운산(883m)은 최고의 ‘동강 전망대’로 꼽힌다. 석회암 뼝대(‘벼랑’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를 굽이치며 휘돌아가는 동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정상에서부터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백운산 전체를 등산하기가 버겁다면 ‘칠족령’에만 올라도 충분하다. 정선의 제장마을과 평창의 문희마을을 잇는 고개다. 1시간도 안 되는 발품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칠족령엔 가난한 선비와 그가 기르던 개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고개 남쪽의 제장마을에 옻칠로 연명하던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선비가 기르던 개가 발에 옻을 묻히고 사라졌다. 개를 찾기 위해 옻 발자국을 따라가던 선비는 이곳에 올라 넋을 잃었다. 금강산에 뒤지지 않는 동강 물굽이의 절경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후 선비는 옻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내고 옻 칠(漆)자, 발 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했다고 한다.
문희마을에서 칠족령까지는 약 2㎞.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고 순하디 순하다. 푹신한 숲길이어서 느릿느릿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그늘진 곳이 얼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등산로 오른편의 가파른 비탈 아래로 동강이 흘러간다.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나무 사이로 풍경이 스쳐지난다.
20여분쯤 오르면 돌탑이 나타난다. 옛날 성터의 흔적이다. 여기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칠족령 정상을 넘는 길이고, 오른편은 전망대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오른편으로 20m쯤 내려가면 까마득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나무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공사판의 비계처럼 철구조물로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 서면 잘 그린 열두 폭 산수화 병풍을 펼친 듯한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산줄기 아래로 옥빛 물길이 용틀임하며 흘러간다. 강 쪽의 칼로 깎아 세운 듯한 단애(斷崖) 너머로 유장하게 펼쳐진 산세는 ‘수호지’의 철옹성인 양산박을 연상케 한다.
계곡 사이를 흐르는 강물은 차별침식으로 태극지형을 만들어놓았다. 산태극수태극 등 산줄기를 휘감고 흘러가는 물돌이동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한꺼번에 써도 부족할 지경이다.
칠족령에서 ‘하늘벽 유리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정선 연포마을로 내려서게 된다. 가는 길이 뼝대 위 능선을 지닌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수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아찔함이 함께한다. 그 너머로 강마을들이 그리움처럼 눈망울에 맺힌다. ‘치명적인 비경’이 가슴에 담긴다.
하늘벽 유리다리는 성인 140명이 동시에 올라가더라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길이 13m에 고작 8m가 유리로 된 다리지만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다리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105m 낭떠러지는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그러나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동강과 물결에 포개지는 햇살의 풍광은 두려움을 이긴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다.
여정을 이어가면 ‘하룻밤 세 번 달 뜨는 마을’이라 불리는 연포마을에 닿는다. 휘영청 뜬 달이 마을 초입에 우뚝 선 범상치 않은 봉우리 세 개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마을에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 건물이 있다. 영화 ‘선생 김봉두’(2003년) 촬영지다. 학교는 1999년 폐교됐다. 30년 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 169명. 1년 평균 6명이 채 못 된다고 한다.
‘하늘벽 유리다리’를 본 뒤 문희마을로 원점 회귀하려면 칠족령 갈림길로 되돌아와야 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백룡동굴도 빼놓을 수 없다. 칠족령 아래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260호 석회암 동굴이다. 입구가 강과 가까워 물이 불어 수면이 상승하면 동굴 안으로 물이 밀려들기도 하는 특이한 형태다. 총면적은 95만6434㎡, 총 길이는 약 1.2㎞. 동굴 내부에는 꽈배기 모양 석순, 피아노 소리를 내는 커튼 모양 종유석, 달걀 프라이를 닮은 석순 등 갖가지 모양을 한 종유석과 석순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백룡동굴을 둘러보는 건 관람이 아니라 탐험에 가깝다. 우주복 같은 빨간색 탐험복과 헬멧을 쓰고 장화와 장갑까지 갖춘 뒤 조명 없는 동굴 속을 때로는 기어가며 헤드랜턴을 비추면서 보아야 한다. 동굴 내부 기온은 연중 13도 안팎이어서 겨울철에도 인기다.
동굴의 백미는 마지막 광장에 있다. 모든 불빛을 끄면 완벽한 어둠이다. 칠흑 속에서 ‘빛과 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동굴 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 설치된 조명등을 켜면 벽화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석회암 동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 종유석을 모아놓은 ‘만물상’이나 다름없다.
겨울철 백룡동굴 탐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20분까지 10회 운영한다. 2인 이상 관람 가능하며 만 9세 이하, 65세 이상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왕복 1.5㎞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어른 1만5000원, 어린이 1만원.
평창·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