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뉴욕과 바꾼 육두구 산지

육두구


17세기 금값의 후추보다 더 비싼 향신료가 있었다. 바로 육두구(Nutmeg)다. 인도네시아 반다제도가 원산지로 ‘사향 냄새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후추 가격의 10배였다. 따라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육두구 산지인 반다제도를 장악하는 데 사활을 걸고 1621년 10여척의 전함을 이끌고 쳐들어갔다. 여기에 일본인 용병 사무라이들까지 있었다. 그들은 영국군을 물리치고 원주민 대부분을 죽였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야만적 침탈로 육두구를 독점 매매했다. 이렇게 향신료에는 피의 역사가 함께했다.

육두구는 씨앗을 갈아 만든 향신료다. 후추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지만 고급스러운 향미가 나며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 씨앗의 붉은 껍질 역시 향신료로 쓰며 메이스(mace)라 불렀다. 유럽에 메이스가 처음 들어왔을 때 오히려 이게 육두구보다 인기가 많았다. 육두구와 메이스 관계를 몰랐던 동인도 회사 경영자들이 반다제도에서 육두구 나무를 전부 베어버리고 메이스 나무를 심으라는 명령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1660년 영국의 2차 항해조례는 향신료, 설탕 등 중요 상품은 영국령끼리만 교역하도록 했다. 당시 무역 강국인 네덜란드의 목을 조르자는 의도였다. 1663년 3차 항해조례는 더 가관이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모든 화물은 먼저 영국에 들러 하역 후 재선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식민지로 향하는 모든 화물에 영국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식민지와 다른 국가 간 직접무역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예전의 열강은 이렇게 막무가내였다.

결국 영국과 네덜란드는 1665년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2차 전쟁은 네덜란드의 승리였다. 승전국 네덜란드는 육두구 산지 반다제도와 사탕수수 산지 수리남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대신 뉴욕을 영국에 내주었다. 당시로서는 육두구와 사탕수수 산지가 네덜란드에 경제적 가치가 더 높았겠지만 전쟁에 이긴 네덜란드가 뉴욕을 포기한 건 큰 실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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