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기행(奇行)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살을 에이는 칼바람이 부는 엄동설한에 마라톤을 하다니, 그것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한국 첫 전시를 보려고 충북 청주에서 서울까지 달리기를 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기행에 가까운 ‘이벤트’를 벌인 사람은 아마추어 마라토너 송봉규(47)씨. 지난 8일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송씨를 만났다. 그의 오른손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전시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들려 있었다.
송씨는 “국내에서 반 고흐 전시가 열린 2008년부터 좋은 전시가 열릴 때마다 달려서 전시장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마라톤을 한 횟수가 30회가 넘는다”고도 했다. 그는 “걸작에 존경의 뜻을 전하고 싶어 달리기를 해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다”며 “마라톤을 할 땐 만나게 될 작품들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한다”고 덧붙였다.
송씨가 자코메티 전시를 찾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한 건 지난달 27일이었다. 첫날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충남 천안 병천우체국까지 28㎞를 달렸다. 이틀 뒤인 29일에는 병천우체국에서 천안터미널까지 18㎞를 뛰었다. 이런 방식으로 송씨는 7차례에 걸쳐 총 135㎞를 달려 이날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도착했다. 춥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노천탕에 들어간 느낌이라고. 얼굴은 춥지만 몸은 엄청 더웠어요.”
송씨가 자코메티의 작품에 매료된 건 2000년이었다. 당시 그는 건축가 승효상씨의 특강에서 자코메티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자연스럽게 자코메티의 작품들을 찾아봤고,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마라톤에 관심을 가진 것도 뭔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어서였죠.”
자코메티가 그를 마라톤의 길로 인도한 셈이었다. 송씨는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51회나 완주했다고 한다. 최고 기록은 3시간37분. 그는 “이제 ‘정해진 길’은 달리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송씨에겐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아들 두 명이 있다. 그의 가족은 ‘마라톤 이벤트’를 벌이는 가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송씨는 “자식들은 매번 나를 응원해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자코메티의 걸작들을 관람했다. 송씨는 “왜 자코메티를 현대미술의 거인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말 굉장하더군요. 작가의 고뇌가 작품 곳곳에 묻어나더라고요. 자코메티가 그랬듯 저도 저만의 삶을 완성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글·사진=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