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쇼핑, 가성비 보다 심리적 만족감 추구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 앞다퉈 남성에 러브콜
루이비통, 봄·여름 남성 신제품 한국서 첫선
에르메스 매장서 여성복은 2층으로 밀려나
신세계百 명품 30대 고객 남성이 9.7%P 많아
직장생활 5년차 손정수(32·남)씨는 최근 쇼핑 품목과 쇼핑 스타일이 확 바뀌었다. 손씨는 "전에는 게임기 등 전자기기를 주로 구입했으나 요즘은 셔츠 코트 등 의류나 팔찌 부토니에(장식 핀) 등 패션 소품을 많이 구입하고 있다"고 18일 말했다. 또 '가성비'를 최우선 조건으로 꼽았던 손씨는 요즘 '가심비'를 꼼꼼히 따지고 있다. 가성비가 가격 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것이라면 가심비는 심리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쇼핑 행태다.
따라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들은 상품을 구입할 때 가격이 싼 것을 선택하지만 가심비에 비중을 두는 이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자신을 위한 것으로 구매한다.
손씨처럼 가심비를 중시하고 패션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최근 크게 늘면서 럭셔리 패션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안정된 경제력으로 구매력까지 갖춘 30, 40대 한국 남성들에게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 다퉈 ‘러브콜’을 보낼 정도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은 지난 8일 올 봄·여름 남성용 신제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19일 정식 출시에 앞서 신세계백화점 본점 루이비통 남성 전용 매장에서 판매에 나섰다. 남녀 제품을 한 매장에서 판매하던 루이비통은 남성 고객들이 증가하자 신세계 강남점과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 4층에 남성 단독 매장을 오픈하기도 했다. 펜디와 라르디니도 최근 세계 최초로 신세계 강남점에 남성 단독 매장을 열었다. 세계적인 브랜드 에르메스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1층을 남성복 매장으로 꾸미기도 했다. 남성복에 자리를 내준 여성복은 2층으로 올라갔다. 전 세계 에르메스 매장은 물론 다른 유명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 1층 역시 대부분 여성복이다.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30, 40대 남성들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백화점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남성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2007년 23.0%에서 지난해 34.1%까지 치솟았다. 특히 ‘명품’으로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 코너에선 여성을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장르 30대 구매 고객의 성비를 분석한 결과 30대 남성이 여성을 9.7% 포인트나 앞섰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지난해 연간 2000만원 이상 구매하는 VIP 고객 중 30대 남성이 4%나 늘었다.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보석 장신구(주얼리)를 구입하는 남성도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17년 주얼리 장르의 전년 대비 전체 신장률은 1.7%에 머무른 데 비해 남성 주얼리는 10%나 증가했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인 프레드의 ‘포스텐’ 팔찌의 경우 구매 고객 10명 중 7명 이상이 남성이었다. 현대백화점의 럭셔리 브랜드 시계 매장에서도 남성 고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15년에는 22.1%, 2016년에는 26.1%, 2017년에는 30.3%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0, 40대 남성들이 백화점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떠오르면서 백화점들은 남성들을 위한 공간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1년 10월 업계 최초로 신세계 강남점에 남성 전문관 ‘멘즈 살롱’을 오픈한 신세계백화점은 본점에도 럭셔리 남성 전문관을 오픈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브랜드,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차세대 선두주자로 지목된 100여개의 브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무역센터점과 판교점에 고급 남성 복합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남성 전문관 ‘현대 멘즈관’을 마련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압구정본점을 시작으로 무역센터점, 판교점, 목동점에 프리미엄 남성 잡화 편집숍 ‘폼 멘즈 라운지’도 오픈했다. 롯데백화점도 해외 남성 의류 편집 매장 ‘엘리든 맨’, 남성 의류 및 용품 편집 매장 ‘다비드 컬렉션’, 남성 구두 편집 매장 ‘맨잇슈’ 등을 운영 중이다. 갤러리아백화점도 명품관 이스트 4층에 남성 컬렉션 전용 매장을 선보여 남성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 배재석 상무는 “경제력을 갖추게 된 30, 40대 남성들이 결혼 적령기까지 늦춰지자 ‘나’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꾸면서 쇼핑과 패션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며 “백화점 내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남성 고객들을 잡기 위해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도 남성 단독 매장을 앞 다퉈 출점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