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유대인의 독점 상품, 커피

커피 원두


9세기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밤 기도 시간에 졸음을 쫓기 위한 약으로 커피 열매를 씹어 먹었다. 커피가 잠 쫓는 귀한 약이 되자 이슬람권에서는 씨앗이 외부로 유출되는 걸 엄격히 통제했다. 유럽으로 수출할 때도 발아하지 못하도록 씨앗을 끓이거나 볶아서 반출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가공법의 발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이후 커피는 15세기 중반 콘스탄티노플에 소개되고 그곳에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그 무렵 커피의 독점 수입을 주도한 것은 베네치아 유대인들이었다. 당시 유대인만이 유일하게 이슬람 사회와 기독교 사회를 왕래하며 무역할 수 있었다.

당시 천주교 사제들은 커피가 악마의 음료라며 교황에게 음용 금지를 탄원했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커피를 맛본 교황은 그 맛에 반해 오히려 커피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커피는 단숨에 유럽을 정복했다. 커피 수요가 급증하자 예멘의 유대 상인들은 커피 독점 공급을 완벽하게 관리하기 위해 수출용 커피를 아라비아 반도 남단 ‘모카’ 항구에서만 수출토록 했다. 유대인들은 커피 반출을 엄격히 통제했고, 심지어 에티오피아 커피까지 모카로 가져와 수출했다. 모카에는 3만명가량의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17세기 말까지 300년간이나 커피 무역을 독점했다. 이렇게 커피가 모카 항구만을 통해 수출되면서 유럽 사람들은 자연스레 커피를 모카라 불렀다.

근대 들어 커피를 대량 수입한 사람들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유대인들이었다. 동인도회사 유대인들이 인도에 스파이를 보내 커피 원두와 묘목을 밀반출해 네덜란드 식물원에서 커피 묘목 재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커피 묘목을 스리랑카 실론으로 가져가 대규모 재배를 시도했지만 해충 피해로 실패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1696년 커피 종자를 인도네시아 자바로 가져가 대규모 커피 농장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커피의 최초 대량 재배는 아시아에서 시작됐다. 그 후 유대인들은 커피 재배와 커피 교역을 모두 주도했다. 이후 커피는 중남미로 전파되었다.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