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다리를 다친 이모가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아름답기까지 해서 몰래 그 걸음을 흉내 내다가 어른들한테 들켜 혼난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한 친구와 함께 휠체어를 만들어보겠다고 나무의자와 버려진 자전거 바퀴를 달아보려고 한 적도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어설픈 바퀴의자를 버려두고 어스름한 저녁 집으로 돌아갔다. 막연하게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 처음 쓴 습작 소설은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몸이 부자연스러운 사람들과 느리게 걷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영화를 볼 때도 감독이 인물을 어떻게 걸어가고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한 시선으로 연출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패럴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우주의 특이점이 된 스티븐 호킹의 소식을 접하면서 인간의 움직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사연과 병증으로 인해 앉아서 움직이고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다르듯 휠체어와 기구를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 또한 동선에 따라서 크게, 혹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라는 감동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가 그들의 시간 속으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군병원에서 만난 계급도 나이도 많던 한 친구가 문득 생각날 때가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던 그가 어느 날 새벽, 나를 깨워 병원 베란다로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나 역시 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어설프게 움직이는 나를 놀리곤 휠체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 끝에 촉촉해진 눈으로 먼저 들어갈 테니 너는 좀 더 있다 와라, 명령한 뒤 복도를 따라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희미한 어둠 속으로 바퀴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무언가를, 자꾸만 생각하고 있었다.
김태용(소설가·서울예대 교수)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