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민족주의적·권위주의적·외국인 혐오적인 유럽 정당과 정치인들의 부상. 최근 몇 년간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었던 드라마틱한 사건들이다.
독일 전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는 신작 ‘서구의 쇠퇴’(Der Abstieg des Westens)에서 지정학적 위상 변화, ‘서구 우세’의 종언, 세계 권력으로 부상하는 중국 등 드라마틱한 변동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12년 전 정치 인생을 마감한 피셔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은 개혁이냐, 자포자기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서구의 문화적·지정학적 우세는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유럽은 미래에도 그들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을까?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 있는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의 리더 역할이 중요하며 미국 없이는 유럽의 안전과 자립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또 반 난민·반 이슬람 우익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브렉시트와 같은 신민족주의 및 고립주의의 파괴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피셔는 반전 정당인 녹색당의 전통을 깨고 유고 내전과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정부가 앞장선 나토의 세르비아 공격을 불가피한 전쟁이라며 지지했다. 이런 피셔에게 미국과의 동맹 필요성 및 유럽의 확고한 연합은 중요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혹자는 피셔가 서구 사회에 적용한 비판적인 고찰과 회의적 현실주의는 자기성찰적인 독일 정치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이며 그의 책이 유럽 사회에 던지는 경고이자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베를린=김상국 통신원 (베를린자유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