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었고 누구나 그림책을 적어도 한 권은 읽고 자랐다. 그림책이 그날 밤 꿈을 바꿔놓은 경험, 그림책으로 잔잔한 위로를 받아본 기억, 뜨끈한 방바닥에 엎드려 귤을 까먹으면서 그림책을 넘겨본 추억,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가며 그림책을 읽어주던 엄마 아빠의 얼굴…. 그림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뜻 손이 갈만한 에세이다. 그림책만으로 어떻게 얼마나 충분한지, 내 마음과도 같은지 확인하고 싶게 한다.
책은 첫머리에 ‘파이 이야기’를 쓴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의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의 한국어판 서문을 인용한다. 마텔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쓴 편지 한 토막이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마텔은 독서를 하지 않는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2주에 2권씩 4년 동안 책을 보내고 편지를 썼다. 마텔이 보낸 책 중엔 그림책도 여러 권 있었다고 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그림책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픽션들 중 왜 그림책에 빠져들었을까. 어린이도서연구회,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해온 저자는 그림책 읽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린이 문학이 주는 아름다움과 깊이는 내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었고, 그래서 난 그 무엇이 아니어도 좋았다. 무엇보다 함께 책을 읽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림책은 주로 함께 읽는다는 것도 특별하다. 엄마와 딸이, 형과 동생이, 삼촌과 조카가 함께 읽는다. 소리 내 읽으면 시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다. 읽어주는 사람도 자신의 목소리에 실린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가 텍스트에서 벗어나 그림으로 펼쳐진다. 그림에 담긴 상상력이 목소리에 얹혀 책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함께 읽으며 서로를 만나가고 상상력을 펼쳐내는 즐거움을 책은 내내 말하고 있다.
책에는 23권의 그림책이 등장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겁쟁이 빌리’(앤서니 브라운) ‘리디아의 정원’(사라 스튜어트) ‘까마귀 소년’(야시마 타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존 버닝햄) 등 세계적으로 검증된 외국 작가들의 그림책이 나온다. ‘담’(지경애) ‘민들레는 민들레’(김장성) ‘훨훨 간다’(권정생) 등 국내 작가들의 아름다운 그림책도 소개된다. 좋은 그림책을 만나는 기쁨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문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