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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사멸해가는 말들의 단어장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요시오카 노보루 지음/문방울 옮김/시드페이퍼/116쪽/1만3000원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침묵의 미래’는 소수언어를 다룬 작품이다. 소수언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해당 언어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가뭇없이 사멸할 위기에 처한 말과 글이다.

‘침묵의 미래’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소수언어를 보존하려고 설립된 ‘소수언어박물관’에서 살아간다. 작가는 모국어를 쓰는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렇게 적었다. “화자들은 중이염이나 관절염, 치매, 백내장 외에도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건 말을 향한, 말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이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김애란의 이 작품을 아는 독자라면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 각별하게 여겨질 것이다. 책은 소수언어의 세계를 들려준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언어 50개를 도마에 올리는데, 이들 언어의 역사나 언어학적 특징을 깊게 파고드는 건 아니다. 책은 각 언어를 대표하는 단어 하나를 일러스트와 곁들여 소개하는 구성을 띠고 있다.

예컨대 웨일스어 ‘히라이스(Hiraeth)’를 다룬 챕터를 보자. 히라이스는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히라이스의 뜻풀이를 들려준 뒤 이런 말을 덧붙인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이제는 닿을 수 없다는 그리움이 애달프기에 그토록 잊기 힘들어지는 걸까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페이지 하단엔 현재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적혀 있다. 90만명, 83만명, 65만명, 15만명, 4만명, 5000명….

그러다가 책의 끄트머리에 가면 고작 5명이 사용하는 아이누어 단어가, 이제는 사용자가 한 명도 없는 대안다만혼성어 단어가 등장한다. 사용자가 한 명도 없으니 대안다만혼성어는 우주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언어인 셈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는 당부는 다음과 같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생각지 못한 먼 곳에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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