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감자

감자밭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은 참 많은 걸 남겼다. 감자가 안데스 산지에서 스페인으로 전해진 것은 1570년경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미개한 남미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먹던 감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자의 작은 점들이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천연두를 연상시켜 ‘악마의 열매’라며 멀리했다. 그래서 초기엔 주로 가축 사료로 썼다.

그러나 거듭되는 흉년으로 굶주리던 17세기 초반 감자가 아일랜드인들을 기아에서 건져주었다. 또 유럽 대륙에서 감자의 가치를 알린 힘은 바로 전쟁이었다. 거듭되는 전쟁은 식량 부족을 부채질하였는데, 이때 식량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감자였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7년 전쟁 중인 18세기 중반에 주요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감자 보급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은 감자를 경작해 식량난을 해소하려 했는데 고집 센 농부들의 저항에 부닥쳐 별 성과가 없자 꾀를 하나 냈다. 왕은 마을 어귀 감자밭에 근위병들을 세워 철통수비 하도록 했다. 당시 감자밭을 둘러싼 근위병들의 존재는 농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저렇게 보초까지 설까 싶어 궁금증이 극에 달한 농부들은 감자 서리를 하게 되는데 그 고소한 맛에 익숙해진 농부들이 점차 감자를 많이 심기 시작했고, 오늘날 독일은 ‘감자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1824년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는 북방유입설과 1832년 영국 상선에 의해 들어왔다는 남방유입설이 있다.

옛날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기아 사태가 일어났으나 현대에는 식량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로 기아 현상이 발생한다. 한쪽에선 식량이 남아돌고 다른 한쪽에선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세계 인구가 4배나 늘면서 후진국에서는 기아 현상이 다시 심화되고 있다. 인류 모두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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