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짓다’의 쓰임새를 떠올려본다. ‘집을 짓다’ ‘농사를 짓다’ ‘밥을 짓다’ ‘약을 짓다’…. 생각해보면 이 동사의 속뜻은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닿아있는 듯하다.
별안간 ‘짓다’의 의미를 되새긴 건 최근 출간된 ‘출판하는 마음’ 뒤표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어서였다. “책을 짓고 펴내고 알리는 겹겹의 마음들에 대하여.” 어쩌면 책을 짓는다는 건 집이나 농사를 짓는 일과, 밥이나 약을 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출판하는 마음’은 출판계 사람들 10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인터뷰이의 직업은 각양각색이다. 편집자, 번역가, 온라인서점 MD(구매대행자), 디자이너, 마케터, 제작팀장, 출판사 대표…. 저자는 이들을 통해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들려준다.
애서가를 자처하는 사람도 모를 만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 역시 이 책을 쓰기 전까진 “책의 생장 과정에 무지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현대인은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할수록 ‘총체적’ 삶에는 무능해지고 만다. 그리고 무능과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례와 불통을 낳는다.”
각 챕터는 인터뷰이의 인생 스토리 위에 이들이 느끼는 고충과 보람의 내용이 포개지는 구성을 띠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베테랑 편집자 김민정이다. 책에는 문학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편집자로 전업한 뒤 그가 겪은 좌충우돌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김민정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인터뷰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작가와 출판사만 남고 만든 사람은 없어진다. 이 아름답고 쓸모없는 일이 힘들어 미치겠는데 책이 나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친다고 김민정은 말한다.”
출판계의 내밀한 속사정을, 출판계 사람들의 ‘정서’를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강점이다. 가령 ‘서울 서북부 감성’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서울 홍대나 합정 등 시내 서북부에 출판사가 밀집해 있는 현상에서 착안한 조어인데, 이 말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저희끼리 하는 말로는 ‘서울 서북부 감성’이라고 하는데요(웃음). 출판인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저자이고 글도 훌륭한데 막상 시장에서는 큰 성과를 못 내는 저자와 도서가 있다면 그건 ‘서울 서북부 감성’에 너무 치우쳐져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마케터 문창운)
출판 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전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출판계 연봉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복지 수준도 형편없다는 사실을 전한 뒤 이런 질문을 던진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내고 그 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는 왜 그 잣대를 자기 회사엔 적용하지 않을까.”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비슷한 부분도 적지 않다. 이들은 책을 만드는 일에 자긍심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책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사실을, 이문을 남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저자인 은유는 저서 ‘글쓰기의 최전선’(메멘토) ‘쓰기의 말들’(유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서해문집)로 필명을 날리고 있는 논픽션 작가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그의 필력이다. 책은 인터뷰집이지만 일문일답의 구성을 띠진 않는다. 저자는 자신과 인터뷰이 사이에서 잔잔한 파도처럼 오갔던 말들을 추리고 기워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저자는 상당한 애정을 갖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 같다.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 뭉근한 온도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출판계 종사자에겐 재밌을 것이고, 출판계 취업을 꿈꾸는 청춘에겐 유익할 테며, 나머지 사람에겐 신기하게 다가올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