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그 옛날 우리를 웃게 만든 영구와 맹구도 발달장애인이었다. 어수룩하고 엉뚱했으며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속마음은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지금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엔 영구나 맹구 같은 캐릭터가 꾸준히 등장한다.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도 누군가 동문서답을 하거나 어설픈 행동을 보이면 출연자들은 무람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다. “나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저런 바보 형 있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의 자녀가 발달장애인이라면 저렇듯 ‘바보’ 운운하면서 웃고 떠드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은 발달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에세이다. 책의 중간쯤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PD들,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 및 개그맨들에게 강력히 요청한다. 인지 문제가 있는 발달장애인을 바보 취급하며 웃기는 존재로 묘사하는 걸 중단해 달라고. …당신들이 ‘동네 바보 형’이라며 놀리는 건 분장을 한 누군가가 아니라 내 아들이라고.”
이쯤 되면 이 책이 독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선사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현실’에 무관심했던 독자라면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책을 펴낸 류승연(41)씨는 평탄한 삶을 살아온 직장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치동 학원가에서 10대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엔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결혼한 뒤 난임 문제로 고생을 했지만 3년쯤 지났을 때 임신에 성공했다. 이란성 쌍둥이였다.
문제는 2009년 9월 예기치 않은 조산을 겪으면서 시작됐다. 먼저 세상에 나온 딸은 괜찮았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성장이 더뎠다. 돌이 됐는데 ‘뒤집기’를 못했다. 결국 네 살 때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까지는 대변도 가리지 못했다고 한다.
장애아를 애면글면 키우며 고생한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종일관 어둡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띠는 건 아니다. 행간 곳곳에서 영악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티 없이 맑고 한없이 투명한 아이를 키우며 느낀 기쁨과 보람이 묻어난다. 저자는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생을 갓난아기를 키울 때와 같은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되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오해 탓에 문드러지고 해진 저자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감동의 수기가 아닌데도 책을 읽는 내내 코끝이 매웠고 눈가가 알싸했다. 예컨대 저자는 아들을 키우며 “가장 가슴이 미어졌던 순간”이라면서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 시기는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였다. 저자는 아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아들은 까르르 웃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갔고 아이들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같이 놀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말을 못하는 아들이 우두망찰 서 있으니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다른 데로 가버렸다.
저자는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은) 평생을 저리 살아가겠구나.’ 그러면서 덧붙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 아들도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코코아 한 잔을 앞에 두고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친구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장애등급 심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부의 지원 체계를 소상하게 가르쳐 주는 ‘장애 컨설턴트’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아들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진학시킨 뒤 겪은 좌충우돌의 스토리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장애인의 마음엔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었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란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왕자들이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기를, 그렇게 되도록 지구인들이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봐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