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나이 드는 게 두려운 당신에게…

<일러스트=이영은>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한 살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 들어가는 우리 부부를 볼 때마다 나이 육십을 코앞에 둔 남자와 여자가 겪는 ‘나이 듦’의 교본을 한 장씩 넘기는 기분이다. 비록 건강체질은 아니지만, 병치레 잦은 나와는 달리 3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비교적 무탈하던 남편이 왼쪽 무릎이 아프다며 쩔쩔매더니 정형외과며 한의원 출입이 벌써 3주째다. 팔다리 깁스 경험과 물리치료 전력이 많은 내가 이때다 싶어 잔소리를 쏟아낸다. 살 좀 빼라, 자꾸 누워있으면 안 된다, 심하게 아플 때를 빼고는 조금씩 걸어서 힘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등등.

그런데 아뿔싸! 며칠 무리했다 싶더니 어제저녁부터 허리가 몹시 아파 이번에는 내가 쩔쩔매는 신세가 됐다. 덕분에 전기 찜질기가 남편 무릎에서 내 허리로 번갈아 옮겨 다니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잔소리가 나도 모르게 쏙 들어가 버렸다.

노년에 접어든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어리고 여전히 새파란 나이지만, 내가 속한 50+세대(만 50∼64세, 베이비부머·신노년 등으로 일컫는 중장년층) 역시 그 나름대로 노화를 실감하며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몸과 마음 모두 노화가 시작돼 그 적응도 만만찮은데, 장수시대를 반영하듯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고, 아래로는 독립이 요원한 성인 자녀까지 부양해야 하는 ‘낀 세대’의 괴로움이 더해진다. 다른 세대보다 더 힘들면 힘들었지 결코 여유만만하게 나이 듦을 즐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 청춘세대를 제외하고 나이 듦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거나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들과 나이 듦을 드러내놓고 함께 이야기하며, 같이 잘 ‘나이 들어가는’ 길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앞뒤에서 혹은 곁에서 같이 나이 들어가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친구이며 선후배니까 말이다.

평생 안 늙을 것처럼 구는 것도 볼썽사납고, 매사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지레 움츠러드는 것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이를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자. 노인복지관이나 노인대학에 수업을 하러 가면 오래전부터 꼭 짚고 넘어가는 것이 ‘노인 자격증’ 이야기다. 나이가 과연 자격이고 힘일까. 솔직히 나이는 밥만 먹고 잠만 자도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저절로 늘어난다. 병석에 누운 구십 어르신도, 갓 태어난 아기도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 그러니 나이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나이 먹는 게 중요하다. 나이가 힘이 되고 세월이 약이 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인생의 역사와 경험이 존중받으려면 우선 나이도 잘 먹어야 한다.

사실 누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인생노트에 삶을 기록해 나아가고 있다. 설사 몸이 아프고 치매에 걸려 살아온 인생을 다 잊어버렸다 해도 오늘의 삶은 여전히 그 사람의 인생노트에 기록되는 것이다. 나이 들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노트에는 여전히 어린아이 때와 같은 미숙한 삶의 기록만 남게 될 것이다. 나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무게에 짓눌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 나이를 잘 받아들이고 나이에 맞는 생각과 태도, 관계 맺기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누구나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나이를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다.

청춘을 돌려달라는 노래도 있지만, 모두가 청춘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나이 드는 것을 피하고 싶다고들 하지만, 모두가 다 나이 듦을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못 보던 것을 보게 하고 미처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하며 그 깊이와 넓이로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고전 13:11)”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단계 알아보기

◇ 1단계 : 거부=설날에 어린아이들은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좋아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이 먹는 게 영 반갑지 않다. 당연한 일! 그러나 외면하고 거부한다고 해서 나이를 언제까지 속일 수는 없다. 그것도 스스로에게는.

◇ 2단계 : 인정=나이 듦을 영원히 거부할 수는 없으니 수굿하게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위 모든 사람들이 나이 먹어가는데 나 홀로 젊어 이대로 머문다면 어떻게 될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는 게 어른스러운 일.

◇ 3단계 : 수용=받아들임은 모든 일의 시작이다. 체력의 저하나 노안(老眼), 치아 상태 등 불편한 것도 물론 많지만 모난 성격이 조금은 부드럽게 변하고 분수를 알게 되고…. 나이 먹어 다행인 점들이 눈에 들어오면 드디어 나이 듦의 맛과 멋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된 것.

◇ 4단계 : 즐기기=이왕 먹는 나이 맛있고 멋있게! 주름살 가득하고 쇠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겨우 버티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듬뿍 받는 어른들을 보면, 역시 나이 듦을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누리는 이 시간을 감사하며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멋진 노년의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약력=이화여대 시청각교육과를 졸업하고 CBS 아나운서로 입사해 노인대상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이후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노년을 공부했다. 현재는 노인복지에 관심 있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어르신사랑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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