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초현실적 동화

마크 라이든 ‘유글레나(연두벌레)’. 유화. 46x61cm , 2014


커다란 눈의 소녀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허리까지 오는 까만 머리채와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려진 손 때문에 어두운 화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소녀의 왕방울 같은 눈이 가닿은 곳은 유글레나(연두벌레)라는 생명체의 안점이다. 원생생물인 유글레나는 체내의 엽록소로 광합성을 하니 식물이지만, 입이나 수축포를 갖고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을 보면 동물이기도 하다.

유글레나의 이런 복합성에 끌려 동화책 삽화풍의 그림을 그린 이는 미국의 남성작가 마크 라이든(55)이다. 라이든은 그림 속에 엉뚱하고 황당한 소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을 넘나들며 초현실적인 팝아트를 구현해 왔다. 부친이 옛 그림을 복원하는 전문가였기에 어린 시절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상상력을 길렀고, 오늘날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현실과 초현실, 유치함과 우아함을 뒤섞는 예술을 구가 중이다.

라이든의 그림에는 보는 이의 눈을 잡아끄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와 상반되는 고깃덩어리, 붉은 피가 더해져 기이함을 던져준다. 순수함과 어두운 심리가 교차하는 잔혹동화인 셈이다. 매혹적이나 일면 유치한 그의 그림은 초기엔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표현의 밀도가 더해지면서 스티븐 킹,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유명 인사들을 사로잡으며 팬이 두터워졌다. 최근에는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공연의 무대미술과 의상을 디자인해 호평을 받았고, 일본 등 각국으로부터 전시 제의가 줄을 잇고 있다. 순수에 묘한 반전을 더한 것이 인기의 요체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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