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히샴 마타르 지음/김병순 옮김/돌베개/344쪽/1만5000원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저자와 그의 가족이 겪은 굴곡진 삶이다. 둘째는 이 같은 가족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저자의 필력이다. 이 책은 2016년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올해의 책’으로 꼽았고, 지난해 저자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논픽션 부문)까지 거머쥐었다.
‘독설 평론’으로 유명한 뉴욕타임스 서평 기자 미치코 가쿠타니의 평가는 이랬다. “(저자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소설가의 눈과 시공간을 감지하는 기자의 예리한 촉감으로 글을 쓴다. 산문은 정확하고 간결하며 반듯하다. 내러티브는 함축적이고 음악적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도 찬사를 보냈다. “자신의 분노를 삼켜 억누르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놓지 않기에 더 강력하게 전달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이토록 대단한 격찬을 이끌어낸 것일까. ‘귀환’에는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알기 위해 20년 넘게 고군분투한 저자의 실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선 저자 히샴 마타르(48)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1970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그는 소설 ‘남자들의 나라에서’(2006), ‘실종의 해부학’(2011)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의 특이한 가족사는 세상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저자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유엔 주재 리비아 대표부에 재직한 외교관이었다. 평탄한 삶이 보장된 엘리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69년 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쥔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에게 반기를 들면서 리비아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카다피가 누구던가. 카다피는 철권으로 민중을 압제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잔인무도한 방법도 서슴지 않은 독재자였다. 아버지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저자와 어머니, 형 역시도 이집트 영국 미국 등지를 오가며 엄혹한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90년 3월 12일, 아버지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납치돼 악명 높은 리비아의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된다. 가족의 삶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네 개의 기둥으로 균형 잡혔던 구조물에서 기둥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귀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 지점부터다. 아버지의 편지가 비밀리에 가족들 손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93년. 아버지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의 잔학 행위는 우리가 책에서 읽은 바스티유 요새 감옥의 그 모든 것을 훨씬 능가한다” “가끔은 1년 내내 햇빛을 보지 못하거나 감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한 해를 보낸다”….
96년이 되자 아버지로부터 오던 연락은 모두 두절된다. 그해 이 교도소에선 정치범 1270명이 총살형을 당했다. 아버지도 당시 목숨을 잃었을까. 아니면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을까. 저자는 아버지의 생사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국제적인 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각종 언론 인터뷰에 응한다. 카다피의 아들을 만나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다. 2011년 카다피가 죽자 이듬해엔 33년 만에 고국을 찾아 아버지의 흔적을 그러모은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매번 헛물만 켜게 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속도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논픽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그럴싸한 추리소설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기사에 저자가 아버지의 생사를 알게 됐는지, 혹시 아버지를 만난 건 아닌지 밝히지 않는 건 독자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다.
한국인 역시 리비아 국민들처럼 오랫동안 군부 독재를 경험했으니 책에 담긴 내용 중엔 우리네 역사와 포개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끄트머리에는 소설가 조해진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의 싸움과 투쟁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우리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죽거나 사라진 수없이 많은 또 다른 부모가 있다고 말이다. ‘귀환’은 그렇게 태어난 우리에게 살아남은 자의 예의가 무엇인지 진솔하고도 절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