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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응용언어학자인 아들과 어머니가 나눈, 일상의 소소한 수다



어머니와 나/김성우 지음/쇤하이트/304쪽/1만4000원

“그래서 어떤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우는 거예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오는 대답. “자기가 애한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지.”

40대 아들과 60대 어머니가 나눈 대화 한토막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다양한 경험이나 훌륭한 교육의 제공 등을 생각했다. 어머니의 답은 달랐다. 단지 ‘무엇’이 아니라, ‘내가 자식에게 무엇을’이었다. 대상뿐 아니라 관계까지 엮은 지혜였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지혜를 삶으로 옮겨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응용언어학자인 저자가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6년 동안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손짓, 목소리의 톤, 대답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대화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학문적 훈련을 해 왔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표정과 공간의 분위기까지 글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는 대체로 담백하다. 어머니는 딱히 아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당신이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는데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을 때가 많다. 아들과 어머니의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대화를 보다 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일상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건강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책들에서 위로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범람하는 에세이들 가운데 너무 교훈적이거나 훈계조여서 개운치 않은 책들도 있고, 너무 가벼워서 금세 잊히는 이야기도 적잖다.

이 책이 전하는 일상의 소박한 순간은 읽는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시를 읽는 것처럼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읽고 나면 가만히 그 상황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과 인생은 일상에서 만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어머니와의 대화 끝에 저자가 적어 넣은 짧은 소감들도 좋다. “세월을 머금은 관계는 담백한 표정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와 악의 없는 농으로 이어진다. …동네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담담하게 꾸밈없이 써내려간 감상을 읽다 보면 미소가 슬며시 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감독 권경원의 추천사가 와 닿는다. “어머니의 말을 묻고, 듣고, 옮겨내는 일은 그립다는 말로 덮어버렸던 완료형의 어머니를 진행형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책을 덮은 나는 나의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아무런 용건도 없이 어머니에게 문득 말을 걸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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