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개장은 1896년 ‘규곤요람’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우리 민족의 전통 음식이다. 얼큰하면서도 구수한 풍미가 중독성 있는 맛이다. 고대한국은 원래 채식국가였다.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은 한반도에 풍부했던 콩과 해산물로 대신했다.
육식은 13세기 고려를 침공한 몽골의 육식문화에서 비롯됐다. 그나마도 고려시대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조선시대에는 소가 농사짓는데 유용한 동물이라 건강한 소의 도축을 엄격히 금하는 ‘우금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런 연유로 민가에서 잔칫날이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개를 잡아 국을 끊이는 풍습이 있었다. 일명 개장(狗醬)이다.
특히 선조들은 삼복 때 보양음식으로 개장을 즐겼다. 이때 개고기의 심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맵고 진한 양념과 함께 대파, 숙주, 고사리 등을 같이 넣고 끓였다. 개가 귀한 철이거나 개고기를 싫어하는 손님이 오면 마을 어른들이 개 대신 병들거나 늙은 소를 공동으로 잡아 개장 방식으로 국을 끓였는데 이것이 육개장이다. 육개장은 소고기가 들어간 개장이라는 뜻이다. 고기를 결에 따라 손으로 찢어서 탕에 넣은 모양새까지 똑 같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비운의 왕인 순종이 나라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대령숙수가 올린 육개장을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에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해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상심한 임금에게 대령숙수는 조선의 정신을 아뢰었던 것입니다.” 영화 ‘식객(食客)’의 대사다.
홍익희(세종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