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관찰대상국 지목… 美 “신속한 공개를” 노골적
공개 미루던 韓 버티기 부담
환율·수출경쟁력 고려 “공개 수위 최소화” 고심
한국이 ‘환율조작국(심층분석대상국) 꼬리표’를 피했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환율보고서에 넣었다. 한국도 마냥 결정을 미루기 어렵게 됐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공개’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과 수출기업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범위·수위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14일 ‘주요 교역대상국의 환율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은 매년 4월과 10월에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의회에 제출한다. 환율보고서의 핵심은 특정국가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다. 한국은 올해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환율조작국 지정요건 3가지 가운데 ‘외화 순매수액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초과’라는 기준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머지 2가지 요건(대미무역 흑자, 경상수지 흑자)에 걸렸다. 중국과 일본, 독일, 스위스, 인도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지목됐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압력’의 강도다. 미국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고 줄기차게 한국 정부를 누르고 있다. 이번 환율보고서에서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원화가치가 오를 때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 한국은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내역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내놓은 환율보고서에는 없던 내용이다. 노골적으로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주요 20개국(G20) 등 국제사회는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요구해 왔다.
한국 정부는 환율주권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밝히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 국가의 다자간 무역협상인 ‘포괄·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려면 ‘공개’가 불가피하다. 이들 국가는 2015년 TPP 공동선언을 채택하면서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요건으로 명시했었다. 미국이 CPTPP에 가입하면 외환시장 개입 공개가 한국의 발목을 붙잡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공개’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밝히면 정부의 ‘미세조정’ 역할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는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으로 나타난다. 원화가치가 오른 만큼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은 하락하게 된다.
정부는 수출전선에 타격이 가장 덜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분기별 달러 순매수액을 공개하는 걸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한 분기에 매수·매도한 달러화 총액만 발표하면 개입 내역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CPTPP에 가입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도 6개월 주기로 달러화 순매수액을 공개하기로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19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한국 정부의 이런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세계은행(WB)·IMF 정기회의에서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