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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사랑한 ‘국민 할머니’… 바버라 부시

바버라 부시는 일생을 남편과 아들의 정치활동을 지원하며 보냈다. 1998년 11월 14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카운티 해변에서 남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 폭소하는 바버라. AP뉴시스


1999년 11월 8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편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연방 서기장의 대화를 듣는 모습. AP뉴시스


퍼스트레이디 시절이던 1990년 1월 22일 워싱턴DC의 보육시설을 방문해 아이를 끌어안은 바버라. AP뉴시스


2016년 2월 4일 뉴햄프셔주 데리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막내아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유세를 돕던 장면. AP뉴시스


남편·장남 대통령 취임을 생전에 지켜본 유일한 퍼스트레이디
유머 감각·말솜씨 덕에 인기 높아… 노년엔 흰머리와 주름에 당당


미국에서 지난 세기 가장 인기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꼽히는 바버라 부시가 17일(현지시간) 숨을 거뒀다. 향년 92세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내이자 그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어머니다.

바버라는 지난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과 울혈성심부전(CHF)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 올해 들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이를 중단하고 자택에서 임종을 맞았다.

바버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상류층으로 살았지만 소탈한 성격과 유머 감각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았다. 남편이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이미 공화당의 유명인사로 이름이 알려졌다. 대통령을 지낸 남편과 아들보다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자서전 2권과 반려견의 이야기를 담은 ‘밀리의 책’ 등 저서는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의 베스트셀러다.

바버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기숙학교에 다니던 16세 무렵 학교 댄스파티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1년 반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하던 둘은 부시가 2차대전 참전을 위해 해군에 입대하기 직전 약혼했다. 해군 파일럿으로 활약한 부시가 부상으로 제대한 뒤 바버라는 스미스대학을 관두고 1945년 19세 나이로 그와 결혼했다.

바버라는 이후 남편의 정유 사업과 26년 정치활동을 돕고 자녀를 키우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바버라 외에 미국 역사상 남편과 자녀가 대통령이었던 여성은 남편 존 애덤스 전 대통령과 아들 존 퀸시 애덤스 전 대통령을 둔 애비가일 애덤스가 유일하다. 다만 살아서 아들의 취임식을 본 건 바버라뿐이다. 20세기에 어울리는 ‘미국판 신사임당’이라 할 만하다.

바버라는 당시까지의 대통령 부인들과 달리 얼굴 주름과 새하얀 흰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코미디언들은 그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에 빗대며 유머 소재로 삼았다. 공식석상마다 착용했던 여러 줄짜리 가짜 진주목걸이와 귀고리 역시 그의 소탈함을 대변하는 트레이드마크였다.

솔직하고 재미있는, 촌철살인의 말재간도 그의 장점이었다. 남편과의 사연을 얘기하면서 “난 첫 키스 상대와 결혼했다”고 하다가도 “이 얘기를 하면 우리 아이들은 토하려고 한다”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남편에게 쏟아지는 비판에도 “조지(남편)가 일은 못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루한 사람은 아니다”라며 재치 있게 대응할 줄 알았다.

바버라는 넷째 아들 닐이 난독증을 앓는 것을 계기로 평생 언어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백악관 입성 전후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기부활동과 강연, 저술로 사회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보수정당 공화당의 대표적 인물이면서도 여성인권이나 인종·계급 차별에 관해서는 당의 입장과 충돌할지언정 명확하게 소신을 내세웠다.

막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맞붙을 당시 바버라는 “왜 사람들이 트럼프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여성으로서 트럼프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비판했다.

말년에 바버라는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88년 자가면역질환인 그레이브스병(바제도씨병)을 앓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천공성 궤양 수술을, 이듬해에는 심장수술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남편과 함께 자선모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백혈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둘째 딸 로빈을 포함해 6명의 자녀를 뒀다. 손주만 헤아려도 17명에 이르는 대가족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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