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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연, 매일 만나는 일상의 기적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우주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때 불확정성 운운하면서 눙치고 넘어가는 분위기를 꼬집은 것이었다. 그의 말을 쉽게 풀어쓰자면 이런 얘기다. “모든 일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모든 사건은 필연의 결과라고, 인간이 어수룩한 탓에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필연을 우연이라고 착각하는 거라고. 예컨대 동전 던지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동전의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건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의 인지력이 동전의 회전 속도를 빠르게 간파하지 못해서다.

즉, 동전 던지기도 필연의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우연의 힘이 삶을 결정한다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 기이한 우연이 인류의 역사를 결정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기치 못한 행운과 불운이 반복되다가 인생의 성패가 판가름 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는 제목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는 과학교양서다. 인과관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건과 다채로운 실험 사례를 통해 우연이 얼마나 파워풀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설득력 있는 필치로 그려낸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이자 물리학자인 플로리안 아이그너(39)다. 양자파동 파동함수 엔트로피 같은, 일반 독자에겐 난수표처럼 여겨질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과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학자들의 심오한 이론들을 개괄한 내용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책은 아니다. 저자는 간명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우연이 만들어내는 삶의 내재율을 들려준다. 3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통계학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까지 느낄 수 있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챕터가 대표적이다.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 그것은 우연의 결과일 때가 많은데,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판단해 교만을 부린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한 교수가 벌인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 참가자는 총 200명. 이들은 2명씩 조를 짰고, 게임은 조별로 진행됐다. 각 조마다 참가자 한 명은 두 배로 많은 돈을 갖고 게임을 시작했다. 이 참가자에겐 게임에서 승리할 때마다 상대보다 두 배 많은 보너스를 지급했다. 게임이 끝났을 때 각 조에서 누가 승자가 됐을지는 불문가지다.

이 실험의 취지는 우연히 주어진 혜택 덕분에 승리할 게 자명했던 참가자들의 태도가 게임을 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거였다. 승자들은 자신의 실력이 대단해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놀려댔다. 탁자에 놓인 과자도 “자주 그리고 당당하게” 집어먹었다.

실제로 사회적인 성공을 일군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 가도에 깃든 우연적 요소를 간과할 때가 많다. 자신의 성공은 온전히 노력의 결과라고 여긴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니 거꾸로 패자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 인생의 레이스에서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이런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적었다. “우연이라는 것이 삶을 언제든 이상한 방향으로 휘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실패를 좀 더 편안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만한 얘기일 것이다.

사람들이 우연히 발생한 일을 두고 특별한 인과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사실도 거듭 지적한다. 이런 엉터리 판단 탓에 운동선수들은 징크스 운운하면서 특정 행동을 반복하고, 아프리카 부족들은 염소를 잡아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은 우연일 뿐이다. 저자는 카오스 이론이나 나비효과처럼 일반 독자에게도 익숙한 과학 이론을 끌어와 우주의 원리라는 게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 세상 모든 일이 우연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것은 독자들에게 얼마간 힘을 북돋아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책의 끄트머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연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 속에서 다채로운 미래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날마다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연의 존재로 우주는 정말 놀라워진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삽화=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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