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의 옷가게 풍경이다. 한 여성이 꽃무늬 치마를 입고 서서 자신에게 옷이 어울리는지 가늠해보고 있다. 가게 주인인 할머니는 이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 치마 딱 니 끼다.”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에는 저렇듯 별 것 아닌 장면이지만 빙긋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글과 그림이 잇달아 등장한다. 책을 펴낸 김은미(41)씨는 지난해 4∼10월 거의 매일 모란시장을 찾아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동이 트는 새벽부터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상인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과 인생 스토리도 취재했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가령 생선가게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낚시를 참 좋아해. 그래서 물고기 파는 장사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 몸은 여기에 있어도 마음만은 항상 바다에 가 있어.” 이런 대화가 등장한 페이지엔 갯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아저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장과 그 너머의 삶에 관한 인터뷰’라는 부제가 붙었다. 저자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는 시리즈를 구상한 뒤 첫 작품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서사의 주인공일 필요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어서일까. 이제는 물건을 사는 사람의 심정도 파는 사람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는 생활인의 눈을 갖게 된 듯도 하다. 그 눈으로 바라본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연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