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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유머·삶의 지혜로 풀어가는 ‘미스터리’

삶에는 여러 사람의 인생과 인생이 겹쳐 있고 그래서 뜻하지 않게 환희와 고통이 교차되는 지점에 서 있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평화가 찾아든다.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베어타운’은 숲 속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을 통해 아이러니한 인간의 삶을 응축해 보여준다. 픽사베이




베어타운/프레드릭 배크만 지음/이은선 옮김/다산책방/572쪽/1만5800원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첫머리에 미스터리를 던지면서 시작하지만 책의 절반 정도가 지날 때까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스웨덴 숲 속 마을 베어타운의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성장 스토리가 이어진다. 9명의 10대와 그들의 부모, 교사, 코치, 이웃들의 삶이 교차돼 그려진다.

4분의 1 정도만 읽어도 스무 명 넘는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의 삶과 선택에 마음을 주게 된다.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도 누구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 잠시 미스터리는 잊게 될 정도로 그들의 삶에 푹 빠져들게 된다.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배크만의 장점은 따뜻한 유머에 있다. ‘베어타운’에도 시종 유머가 흐른다. 진지하고 긴장되는 상황에도, 심각하고 처절한 순간에도 유머를 슬쩍 풀어 놓는다. 인물들은 그렇게 잠시 긴장을 풀고, 독자들은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게 된다. 상황에서 벗어나 진짜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찾게 만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배크만의 책에는 대화가 넘쳐난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기분이 든다. 저자가 대화 속에 담아낸 삶의 지혜가 읽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

은퇴를 앞둔 늙은 코치와 열일곱 살짜리 거친 남자아이의 대화를 엿보면 어떤 식인지 알 수 있다. “은퇴한 노인한테는 어떤 강아지가 좋을까? 저 녀석요. 벤이가 주저 없이 한 녀석을 가리킨다. 왜? 이번에는 아이가 그의 어깨를 토닥일 차례다. 왜냐하면 만만치 않은 녀석이거든요.”

나와 지금 내 곁에 살고 있는 누구나 그렇듯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아픔을 갖고 있다. 얼마나 드러내고 감당하는지에 따라 사는 모습이 서로 다를 뿐이다. 시련에 맞서 이겨내는 사람도 있고, 아픔에 잠식당해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베어타운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이스하키’가 있다. 베어타운 사람들이 아이스하키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과 욕망이 사건을 만들고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든다. 희망과 욕망을 짊어진 청소년팀은 이길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하고, 완벽한 팀워크로 서로를 북돋는다. 누구도 그들을 믿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믿으며 승리를 이어온 작지만 단단한 팀이다. 미완성된 10대들로 이뤄진 청소년팀은 실수도 하고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

청소년팀의 성장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라커룸에 함께 있는 듯 흥분되고, 링크를 함께 달리듯 가슴이 뛴다. 뛰어난 묘사와 생생한 대화가 한몫한다. “관건은 균형이다. 느껴질락 말락 한 한 줄기 바람으로도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수 있다.” “하키 경기에서 지면 심장이 데인 듯한 기분이 든다. 이기면 구름을 가진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저녁 베어타운은 천국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는 어떻게 풀리게 될까. 뜻하지 않은 순간 소소한 장면이 발화점으로 바뀐다. 베어타운의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 가다보면 어느새 격랑의 한복판에 놓이게 될 것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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