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안녕하세요



그림책만 내는 1인 출판사가 하나 있다. 이름에 공작소가 들어 있어 발행인은 공작소장으로 불린다. 나는 이렇게 일 많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편집에 밤새우기 일쑤고, 전국 서점과의 직거래 업무도 직접 한다. 그 와중에 필사적으로 퇴근해서 워킹맘인 아내와 함께 집안일에도 지극정성이다. 수준급 요리와 청소와 빨래는 물론이고 딸 바지 무릎을 예쁜 아플리케로 꾸미는 초인적인 살림솜씨!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면, SNS에 종종 맛깔나는 입담과 사진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수십 개씩 달리는 댓글에 일일이 감사를 표하며 답을 하는 일도 그는 빼놓지 않는다. 모든 일과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친구. 그림책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보내는 애정과 신뢰는 각별한 데가 있다.

그런 그가 둘째가 태어난 지 서너 달 지난 무렵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온갖 뼈가 부러진 채 며칠을 의식불명으로 있을 때 그림책 동네는 한동안 한숨바다였다. 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모두들 할 수 있는 한 손과 마음을 보탰다. 책을 사주자, 도서관에 수서하자, 쾌유를 기원하며 병문안 대신 병원비를 보태자. 제안이 순식간에 퍼져갔다. 간신히 몸을 추스른 공작소장은 ‘감사한 소식에 정말 많이 울었다’는 글부터 올렸다.

그가 펴낸 ‘안녕하세요’를 다시 펼쳐본다. 글 하나 없이 강력한 이미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포르투갈 그림책. 세련된 색채가 풍성한 배경에 혼자만 하얗게 빈 남자가 하루를 살아간다. 뭔가 채워지나 싶다가도 다시 비워지고 또 비고…. 그런데 똑같이 비어 있는 여자가 스쳐간다. 그 뒤 둘에게 생기는 변화. 하얗던 몸속에 붉은 심장과 핏줄이 생겨나는 것이다! 깜짝 놀라 뒤돌아 여자를 보는 남자의 하얀 실루엣에 생기가 솟아난다. 이건 남녀 간의 일뿐 아니라 서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는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몸 안에 생기가 도는 민찬기 공작소장은 그 흐름을 잃지 않고 전달해주기 바란다. 앞으로 계속 안녕하기를 바란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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