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무성 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파문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당사자인 후쿠다 준이치 차관은 여론에 밀려 지난 18일 밤 사퇴했지만 야권은 그동안 성희롱 의혹과 관련한 정부 및 여당의 미흡한 대응에 반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난 20일부터 국회 심의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후쿠다 차관의 상습적인 여기자 성희롱 파문은 지난 12일 잡지 ‘주간신초’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피해 여기자가 여럿이었지만 후쿠다 차관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주간신초는 “키스해도 되느냐”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등 그의 발언이 녹취된 음성 파일을 공개했다.
사태를 더 확산시킨 것은 재무성과 아소 부총리였다. 후쿠다 차관은 “내 목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발뺌하면서 주간신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아소 부총리 역시 후쿠다 차관을 감싸면서 피해자에게 실명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논란이 커지자 TV아사히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음성 파일이 소속 여기자가 녹음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피해 여기자는 2016년 말부터 사석에서 후쿠다 차관의 성희롱 발언이 계속되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녹음했으며 TV아사히 소속 부서장에게도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하지만 부서장은 성희롱을 방송할 경우 해당 여기자가 특정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기자는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있는 인물의 부적절한 행위가 묵인되면 안 된다”며 주간신초에 녹음 파일을 넘겼다. TV아사히는 “성희롱 사건에 대해 바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있다”면서 재무성에 항의문을 전달했다. 피해 여기자는 2차 가해 때문에 입원 치료 중이다.
재무성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학 스캔들을 둘러싼 문서 조작에 연루된 상황에서 이번 성희롱 파문에서 보여준 도덕적 파탄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일각에서는 과거 뇌물 파문으로 대장성을 해체했듯 재무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칼럼을 비롯해 보수층에서는 목소리를 녹음한 피해 여기자의 기자 윤리를 공격하는가 하면 여기자에게 성희롱이 빈번한 취재원의 취재를 맡긴 TV아사히가 잘못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층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투(#MeToo) 무풍지대였던 일본에서 미투운동이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자민당 소속 노다 세이코 총무상이 일본 사회의 여성 경시를 강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일본 언론계가 이번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등 이전과 다른 움직임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열도 덮친 ‘재무성 차관 성희롱’ 쓰나미
입력 : 2018-04-22 1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