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형 文 대통령
돌다리도 두드릴 만큼 신중 31살이나 어린 김정은 상대 끈기있게 설득하며 협상할 듯
돈키호테형 김정은
화끈하고 파격적인 스타일 유학으로 개방적 사고도 지녀 기대 이상의 성과 낼 수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는 27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서 극과 극의 스타일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화법과 제스처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널 만큼 신중하고 협상도 끈기를 가지고 설득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김 위원장은 때론 돌출행동으로 보일 정도로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알려져 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정상이 직접 담판에 나설 경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올해 65세다. 김 위원장(34세)보다 31살이나 많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나이는 18살 차이였다. 문 대통령은 아들인 준용(36)씨보다 2살이나 어린 북한의 ‘독재자’와 핵 문제 및 남북 관계를 논의해야 한다. 외유내강형의 문 대통령과 화끈한 성격의 김 위원장 간 궁합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 섞인 희망도 있다.
문 대통령은 ‘신중한 협상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 아시아판은 지난해 5월 커버스토리로 문 대통령을 선정하고 ‘김정은을 다룰 수 있는 협상가(The Negotiator)’로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언제 어디서든 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終戰)과 함께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당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연속 발사하며 대외적 도발을 이어가던 엄중한 시기였다. 문 대통령의 이런 구상 발표에 우려도 제기됐지만, 문 대통령은 우직하게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물은 올 들어 구체화됐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를 의제로 한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6월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청와대는 한반도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방법과 실현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다. 북한도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9개월 만에 현실화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문 대통령을 만난 외국 정상들은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도 이런 평가들이 큰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렸고,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겐 끈질기게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한 번 결단한 사안은 과감히 밀어붙이고, 우직하게 상대방과 협상하는 ‘정공법’이 문 대통령의 협상 전략인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문 대통령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나씩 차곡차곡 수를 쌓아나가 목표를 이루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화끈하고 파격적인 협상법을 구사한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돈키호테처럼 튀면서도 결단을 할 때는 대담한 성정이 드러난다. 지난해 북·미 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는 핵실험, ICBM 발사를 진두지휘하다 올 초부터는 파격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불러 왔다. 핵무기와 ICBM을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가장 잘 활용해온 지도자라는 평가도 듣는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5일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 대통령이 새벽에 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파격을 좋아하는 로켓맨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3월 말에는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정상외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젊은 지도자로서 개방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한반도 정세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처럼 과시하기 좋아하고, 지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1993∼2001년 ‘박운’이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서 유학한 경험 때문인지 서구식 사고와 개방적 감각을 지녔다는 평도 있다.
남북 정상 간 화법 차이는 극명하다. 문 대통령은 차분하게 필요한 말만 하는 성격이다. 변호사 출신인 만큼 논리 정연하고 꼼꼼하다. 직설보단 우회 화법을 주로 쓴다. 면전에선 반박하는 대신 “알겠다”며 상대방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김 위원장은 꾸밈없는 표현을 쓰거나, 유머를 섞기도 한다. 대북 특사단에게 자신이 해외에서 ‘로켓맨’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방북 예술단에게는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며 북한식 유머를 사용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을 향해 과도한 칭찬도 곧잘 사용한다. 김 위원장은 2015년 6월 여성 초음속전투기 비행사에게 “기특하다. 하늘의 꽃이다”고 칭찬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리 작성된 연설문에 따라 발언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김 위원장은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발언을 할 때가 많다”고 분석했다. 너무 다른 스타일과 화법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통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많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내야 하는 협상에선 두 사람의 극명한 협상 스타일이 오히려 기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성과물을 도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두 정상 모두 정상회담을 통해 얻어야 할 게 있기 때문에 만남에선 무엇보다 실용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두 정상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것이고, 물밑 협상이 선행됐기 때문에 큰 이견 없이 비핵화 등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병로 교수는 “11년 만에 마주한 만큼 남북 정상은 각자의 성격과 화법을 이용해 최대한의 성과를 뽑아내려 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