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거쳐 10년간 대통령 집권
3년 전 “총리 안해” 공언했지만 지난 17일 장기 집권 시도
시민들 사퇴 요구하며 거리 나서… 경찰 강경진압으로 부상자 속출
아시아와 유럽 사이 소국(小國)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난 반독재 투쟁이 결국 국민들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거리로 쏟아진 시민들이 열흘 만에 거둔 상징적 결과물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3일(현지시간) 세르지 사르키샨(63) 총리가 공식 홈페이지에 사임의사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수도 예레반 곳곳에는 ‘피플 혁명’의 성공을 환호하는 시민들로 넘쳐나고 있다.
사르키샨의 사임의사 발표는 지난 17일 내각책임제 총리에 취임해 장기 집권을 시도한 지 엿새 만이다. 2008년부터 연임을 거쳐 10년간 대통령으로 집권해온 사르키샨은 2015년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꿀 당시만 해도 총리가 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9일 종료된 뒤 약속을 깨고 자신이 소속된 제1당 공화당의 지원 아래 총리에 취임했다.
지난 13일부터 가두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사르키샨의 총리직 사퇴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 청사가 위치한 예레반 광장에 운집한 시위대 규모가 한때 5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전체 인구가 300만명에 못 미치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이들은 인접국 조지아의 국경을 가로막기도 했다.
경찰이 섬광수류탄과 최루탄을 동원해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시위대 가운데선 부상자가 속출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경찰에 연행된 시위대 인원은 280명을 넘어섰다. 병원으로 실려 간 부상자만도 최소 7명이다.
앞서 지난 22일 오전 시위대를 이끌어온 야권 지도자 니콜 파쉬냔 시민계약당 의원과 사르키샨 사이 면담이 TV로 중계되는 가운데 열렸지만 사르키샨이 몇 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파행을 빚었다. 같은 날 오후 파쉬냔 의원을 포함해 야당 의원 3명이 연행되면서 시위가 더 거세졌다. 이후 국회 대표가 이들 의원을 면담하는 등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됐다.
이번 승리는 과거 정권의 폭력에 굴복한 바 있는 아르메니아 시민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과거 사르키샨이 승리했던 2008년 2월 대선 직후에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 수만명이 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시위 열흘째 야밤을 틈탄 경찰의 폭력진압에 10명이 사망하고 나서 이튿날 시위대가 해산됐다. 사르키샨은 이번 시위 과정에서 야권에게 “(시위가 실패했던) 2008년 3월 1일을 잊은 모양”이라며 엄포를 놔 더 격한 반발을 샀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