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5번째 임금 광해군은 당대에는 물론 현재까지도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는 패륜을 저지른 폭군, 인조반정에 의해 몰락한 비운의 왕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업적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 또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그는 토지와 호적 대장을 재정비했고, 백성의 편에서 공납제도를 개혁한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동의보감’을 편찬했다. 무엇보다 그가 성취한 외세와의 실리적 외교는 지도자로서 그의 뛰어남을 증명하는 능력으로 종종 언급된다. 명나라와 여진족 사이에서 그가 택한 중립적 위치는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낸 영리하고 대범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한국사에서 광해군이 놓인 위와 같은 복잡한 위치를 탐구하는 영화는 아니다. 광해군의 영광의 시절을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광해군 8년, 즉 왕위를 둘러싼 권력다툼이 극에 달할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의 폭군적인 면모에 집중하는 영화로 보기도 애매하다. 그러니 이 영화가 10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동원하며 그해 하나의 현상이 되었던 것은 역사적 인물인 광해군 자체에 대한 열광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가 기대는 역사적 사실은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광해군의 15일간의 일지가 소실돼 있다. 그리고 광해군의 일기에는 “숨겨야 할 일은 조보(朝報)에 남기지 말라”는 아리송한 문장 하나가 적혀있다. 폭군과 성군의 양면을 지닌 한 임금의 알려지지 않은, 혹은 망각을 요청하는 15일은 한 편의 영화가 매혹되기에 충분한 요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유일하게 기록되지 않은 그 시간에 대한 영화적 상상이며, 1000만이라는 관객 수는 그 판타지에 대한 뜨거운 감응의 결과다. 어떤 상상이고 어떤 감응일까.
우선 영화가 극장에 걸린 2012년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개봉된 9월 초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약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보수 정권 말기, 대선 주자들이 앞 다투어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관람했고, 그들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로 일부 언론들에 의해 자주 언급됐다. 당시에는 대선에 도전하는 정당인이었고 지금은 대통령이 된 인물이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펑펑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이병헌이 분한 왕에게 관객들 모두 각자의 인물, 혹은 각자의 과거 현재 미래를 투영했을 것이다. 당대 한국사회의 정치적으로 특수한 맥락이 이 영화가 적극적으로 소비되는 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듬해, 새로운 정권의 인사들이 이 작품을 ‘변호인’과 함께 ‘좌파 영화’로 낙인찍어 제작배급사에 압력을 행사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존 인물을 바로 떠오르게 하는 ‘변호인’에 그들이 느낀 불안은 그렇다 쳐도 대체 이 영화의 무엇에 그들은 동요한 것일까. ‘광해, 왕이 된 남자’에 가해진 납득할 수 없는 조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흥행 요인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만약 이것이 그저 선하고 정의로운 군주의 선하고 정의로운 지도력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정도의 호응과 반감을 동시에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서사를 지탱하는 대립 항, 그러니까 진짜 왕과 가짜 왕의 구도에 있다. 영화 속 진짜 왕 광해(이병헌)는 역모의 소문에 시달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숨만을 걱정한다. 병적이고 나약하다. 그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를 총알받이처럼 왕좌에 앉히는 선택을 할 정도로 비겁하다. 진짜 왕 대신 그 자리에 온 하층민 광대 하선(이병헌)은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고 건강하다. 처음 그의 행동은 탁월한 모방에 불과했지만, 어느덧 그도 진심과 연기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이런 장면이 있다. 하선이 왕이 된 첫 날 생리현상을 참지 못한 채 “똥이 마렵소”라고 호소하자, 신하로부터 “다음부터는 매화틀을 가져오라고 하십시오”라는 대답을 듣는다. 곧이어 한 소녀가 매화틀을 가져오고 그 앞에 엎드린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한 하선은 소녀에게 당장 나가달라고 하지만, 소녀는 하선의 배변 소리를 듣고는 “경하 드리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궁녀들이 엎드린 채 소녀의 말을 단체로 반복한다.
사소한 코미디의 기능을 위해 삽입된 장면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가짜 왕이 어느덧 민심을 대변해 우렁차게 연설하며 인위적으로 감동을 도모할 때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을 남긴다. 이 낯 뜨거운 상황에 허둥지둥하며 당황하는 가짜 왕이 우스운가, 이 상황을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누렸을 진짜 왕이 우스운가. 음란한 이야기로 관중을 홀리는 광대 하선과 저 많은 여자들 앞에서 엉덩이를 내보이며 배설을 하는 왕 중 누가 더 저급한가.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층민 하선이 궁궐 문화와 부딪히며 일으키는 코믹한 순간들은 물론 상업영화로서의 장치일 것이다. 다만 그 장면들이 영화의 정치적인 진지함을 압도할 때, 이런 짐작은 가능하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비판보다는 조롱에 더 몰두한다.
‘누가 더 저열하고, 우스꽝스러운가’의 물음은 ‘누가 더 정의롭고 선한가’의 물음과는 성질이 좀 다르다. 이 영화가 설정한 가짜 대 진짜의 대결은 실은 ‘정의 대 폭력’ ‘선 대 악’의 구도로 작동하지 않는다. 당시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에 흥분한 정치인들은 그 구도의 한 편에 자신을 투사하느라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이 훌륭한 왕의 초상이라는 믿음은 얼마간 착각에 근거한다. 영화의 결말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허균(류승룡)의 앵무새에 불과하던 하선은 스스로 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백성들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고 간신들에게 호통을 친다. 급기야 제도를 바꾸라고 명령을 한다. 그는 뒤늦게 자기 안에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허균 역시 하선의 꿈을 이뤄줄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우리가 알게 되는 건 하선 자신이 그 욕망을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하선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 진짜 왕이 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난 왕이 되고 싶소이다. 그러나 나 살자고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난 싫소. 진짜 왕이 그런 거라면 내 꿈은 내가 꾸겠소이다.” 영화는 이 말을 플래시백으로 넣으며, 하선의 착한 성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지난 15일간, 그가 실제로 이룬 일들은 무엇인가. 그에게는 스스로 정해둔 두 개의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하나는 왕의 시중을 드는 가련한 소녀 사월(심은경)의 어미를 반드시 찾아주는 일이다. 이 약속은 하선 개인의 동정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백성의 현실에 대한 왕의 태도이기도 하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중전(한효주)을 끝까지 지켜주고 역모의 모함에 빠진 그의 오라비를 구하는 일이다. 그건 이 영화의 멜로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간신들로부터 충신을 지키는 왕의 공정함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임무는 제대로 수행되었는가.
소녀 사월은 왕을 독살하려는 자들의 계략에 스스로 희생양이 되기로 결단한다. 사월은 가짜 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독을 삼키고 피를 토하며 죽는다. 하선의 첫 번째 임무는 실패한 것이다. 중전은 왕의 변화에 내심 감화되고 중전의 오라비는 하선 덕에 풀려난다. 두 번째 임무는 성공했다고 말해도 될 것인가.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다. 하선이 떠난 뒤, 다시 돌아온 진짜 왕에게서는 달라질 가능성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 진짜 왕은 여전히 자신을 해하려는 자들 앞에서 분노를 참지 못할 뿐이다. 복귀하기 전 그는 중전의 오라비는 물론 하선까지도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왕권 하에 중전의 안위가 무사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무엇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가짜 왕과 진짜 왕 모두 무력한 왕이긴 마찬가지다. 전자가 선한 무력함이라면, 후자는 이기적인 무력함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영화의 에필로그에 눈여겨볼 대목들이 있다. 하선을 내내 호위하던 무사 도부장(김인권)은 진짜 왕이 돌아오자 하선을 풀어주고 만다. 가짜 왕을 암살하기 위해 달려온 무리들이 ‘어명’이라고 말하지만, 도부장은 그 명을 거역한다. “용상을 해하려면 나를 먼저 해하시오. 그대에겐 가짜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진짜이니.” 도부장은 하선을 구하고 하선의 발 앞에 엎드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하선은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다. 배를 타고 떠나는 그의 눈앞에 저 멀리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허균이다. 허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선을 향해 예의를 갖추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하선이 자신의 욕망을 접고 그냥 떠나듯, 도부장과 허균은 각자의 ‘마음속의 왕’을 섬기고 간직한 채 현실은 그대로 둔다. 정치라는 갈등의 장으로부터 물러난 선한 마음, 정치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지도자의 환상. 실제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인가.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것인가. 이 영화의 결말 앞에서 결국 1000만 관객들이 환호한 가치의 본질은 무력함에 닿아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궁궐에서 하선이 이룬 유일한 업적은 위태롭고 무기력한 진짜 왕을 아무 해 없이 제자리로 돌려놓은 일뿐이다. 놀랍게도 그해 말, 영화 밖 대선 결과와 이후 한국사회가 겪게 될 일들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 추창민 감독은
중견 여배우들 활약하는 괴이한 코미디 ‘마파도’로 장편 데뷔
1966년 태어난 추창민(사진)은 영화감독으로서는 특이하게도 대구대 축산학과를 나왔다. 첫 장편을 만들기까지 그는 오랜 시간 충무로에서 영화 경력을 쌓았다. 97년부터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의 연출부로 일했고, 김성수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스크립터로 활동했다. 99년 장문일의 ‘행복한 장의사’의 각본과 조연출에 참여하는 것을 끝으로, 2000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영화인 ‘사월의 끝’을 선보였다. 오광록이 출연한 단편영화로 국제영화제들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의 장편 데뷔작 ‘마파도’(2005)는 당시로서는 대담한 설정과 캐스팅을 선보이며 의외의 돌풍을 일으켰다. 지도에도 없는 섬 마파도를 배경으로 김수미 여운계 김을동 김형자 길해연 등 중견 여자 배우들이 주축이 된 괴이한 코미디였다. 독특한 코미디 감각을 인정받은 그는 이듬해 멜로에 도전했다. 그러나 송윤아와 설경구를 내세운 ‘사랑을 놓치다’는 ‘마파도’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다. 2010년에는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영화화했다. 윤소정 이순재 송재호 등이 출연했고 관객들에게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2년에는 강우석이 진행하다 하차한 프로젝트를 다시 각색해서 연출하게 되는데, 그 영화가 바로 ‘광해, 왕이 된 남자’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로 그는 제4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정유정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장동건을 내세워 ‘7년의 밤’이라는 스릴러에 뛰어들었지만 전작에 훨씬 못 미치는 반응을 얻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