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홈’ 이달 들어 국내 전파인증… 최고 기술·자본력에 韓 시장 긴장
SKT·한국콘텐츠진흥원 손잡고 AI ‘누구’에 문화원형DB 탑재
KT는 스마트스터디와 협력 ‘기가지니’·핑크퐁 접목 영어교육
네이버와 제휴한 LG유플러스는 AI 스마트홈·매장 도우미 선봬
일각 “구글홈 국내 콘텐츠 부족… 시장 키우는 조연 역할 그칠 것”
구글이 인공지능(AI) 스피커 ‘구글홈’을 곧 한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출시 시기는 늦지만 ‘IT 공룡’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AI 스피커는 국립전파연구원의 전파인증을 받았다. 구글홈이 지난 6일, 구글홈 미니가 지난 10일 인증을 받았다. 외국 제품의 전파인증은 보통 국내 출시가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다. 이르면 올해 상반기 내에 구글홈이 한국에서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2014년 미디어 스트리밍 기기 ‘크롬캐스트’의 전파인증을 국내에서 받고 그로부터 두 달 뒤 판매에 돌입한 바 있다.
구글은 전사적 차원에서 ‘AI 퍼스트’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구글홈은 AI 퍼스트의 첨병으로 불린다. 카림 템사마니 구글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AI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지난 20년 동안 모바일 생태계가 바꿔온 것보다 앞으로 AI가 갖고 올 변화가 더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조사기관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CIRP)는 지난해 미국에서 구글홈의 판매량을 1400만대로 집계했다. 시장점유율로 보면 31%로 아마존 ‘에코’(3100만대·69%)에 이어 2위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구글홈에 탑재된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한글판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용으로 선보였다. 이에 구글홈이 국내에 출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게 퍼졌다. 국내에서는 전체 스마트폰 사용자 중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비율이 8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홈과 스마트폰의 시너지 효과가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구글이 한국 AI 스피커 시장을 작정하고 노린다면 AI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고 재편까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IT 업체들은 AI 스피커를 통해 특화 서비스와 킬러 콘텐츠를 잇따라 선보이며 시장 수성에 나서고 있다. 통신사들은 인터넷TV(IPTV)와 AI 스피커를 연동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포털 업체들은 음식 배달 등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와 자사의 검색엔진을 활용한 음성검색 기능을 강점으로 꼽는다. AI 스피커는 앞으로 IT 서비스 구축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각 사가 포기할 수 없는 분야다. 현재 국내 AI 스피커 시장 규모는 150만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안에 3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AI 스피커 확산을 위해 IT 업체들은 다른 회사와의 제휴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다른 업종의 업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잠재적 경쟁사와도 협력한다.
SK텔레콤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손을 잡았다. 양사는 콘텐츠진흥원이 보유한 문화원형 데이터베이스(문화원형DB)를 다음 달 SK텔레콤의 AI ‘누구’에 탑재하기로 했다. 역사와 문화재, 민속, 고전을 문화원형이라고 부른다. 문화원형DB는 문화원형을 방송과 드라마, 영화를 비롯해 캐릭터, 패션, 디자인 등 콘텐츠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DB로 쌓인 문화원형 디지털 콘텐츠는 약 10만개에 이른다.
KT는 인기 캐릭터 ‘핑크퐁’으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와 협력 중이다. KT의 AI ‘기가지니’에 핑크퐁을 접목해 어린이들이 핑크퐁 영어교육 영상을 보면서 문장을 따라 말하도록 했다. 기가지니는 발음의 정확도를 분석해 피드백을 해준다. KT는 또 파고다교육그룹과 업무 제휴를 맺고, 기가지니를 이용해 가정에서 영어 학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파고다 생활영어 서비스’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는 네이버와 함께 AI 스마트홈 구축에 나섰다. 네이버의 AI 클로바에 LG유플러스 IPTV와 가정용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를 결합해 ‘U+우리집 AI’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네이버 통·번역 서비스인 ‘파파고’를 이용할 수 있고, 영어교육업체 YBM과 함께 연령대별 맞춤 영어교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또 전국 2000여개 자사 매장에서 AI 스피커가 현장 영업사원의 고객 응대를 돕도록 하는 ‘유플러스 도우미’ 서비스를 선보이며 소비자들과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U+우리집 AI를 기반으로 한 매장 고객 응대 서비스다. 상품·서비스 안내는 물론이고 배웅 인사, 음료 권유 같은 일상대화도 할 수 있다.
이밖에 가전제품을 통해 홈 IoT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는 전통의 가전회사들도 AI 스피커를 내놓았다. LG전자는 네이버의 AI 클로바가 탑재된 씽큐허브를 판매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자체 AI 비서 빅스비가 들어간 스피커를 연내 출시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이처럼 국내 업체들이 AI 스피커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각에는 구글홈이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전용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홈의 한국어 이해 능력에 대해서도 업계는 의문을 제기한다. 구글홈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다음 질문을 예상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이 경쟁사 제품 대비 최대 장점으로 거론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 능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AI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데이터를 쌓고 학습(머신러닝)을 하기에 대화를 많이 할수록 품질이 향상된다. 구글은 국내 업체와 비교하면 대화 데이터가 적을 수밖에 없다. 통신사 관계자는 “이미 국내 업체들이 점유하고 있는 한국 AI 스피커 시장을 구글이 단기간에 잠식하지는 못하고 전체 시장 규모를 키워주는 조연 역할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구글은 국내 음원 서비스 업체와 제휴하며 AI 스피커용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AI 스피커의 핵심 기능인 음악 재생의 경우 국내 제조사들은 계열사 또는 제휴 관계사의 서비스만 탑재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구글 어시스턴트는 멜론·지니뮤직·벅스 등 주요 음원 업체와 모두 손을 잡았다. 구글이 강조하는 이른바 ‘열린 플랫폼’ 형태다. 구글은 음원 서비스를 통해 한국어 대화 데이터도 대량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