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에서 태어난 수평아리의 운명은 처참하다. 알을 낳지 못하니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한다. 인부들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귀여운 수평아리를 마대 자루에 차곡차곡 담는다. “늦가을 즈음 청소부들이 자루에 낙엽을 담듯이” 발로 꾹꾹 눌러가면서 말이다.
자루에 담긴 수평아리는 비료를 만드는 발효기로 향한다. 인부들은 발효기에 닭똥과 병아리를 넣고 기계를 가동시킨다. 칼날이 돌아간다. 병아리들은 서럽게 울어 젖힌다. 삐약 삐약 삐약…. 양계장에서 이 끔찍한 일을 거들었던 저자의 기분은 이랬다고 한다.
“찰스 부코스키는 어디엔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있다고 썼다. 오히려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건 연달아 구두끈이 끊어지는 식의 ‘사소한’ 불행의 연속 때문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수만 개의 구두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저자가 직접 식용동물 농장들을 전전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풀어쓴 책이다. 특이한 건 취재를 위해 이들 농장을 ‘잠깐’ 방문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전국 농장을 돌아다니며 닭똥과 돼지똥과 개똥을 푸면서 4년을 보냈다.
이토록 독특한 책을 펴낸 주인공은 2013년 꽃게잡이 배나 편의점, 자동차 부품 공장 등지에서 일한 경험을 옮긴 르포르타주 ‘인간의 조건’으로 필명을 날린 한승태(37)씨다. 전작이 그랬듯 이번 작품에서도 책장 곳곳에선 저자의 땀과 한숨이 묻어난다.
책에서 다뤄지는 동물은 닭→돼지→개 순이다. 저자는 충남 금산의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전북 정읍의 육계 농장, 경기도 이천의 종돈장, 경기도 포천의 개 농장 등지를 돌아다니며 이 책을 썼다. 이들 농장의 사장들이 하나같이 지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건 돈이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동물은 가차 없이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렇게 수많은 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닭은 닭장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었다. 개들은 음식쓰레기보다 못한 ‘짬’을 먹으며 최후의 날을 기다렸다. 개 농장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개장수보다 더 천한 놈이 누군 줄 알아? 돈 없는 놈! 돈 없는 놈은 살인, 강도보다 천한 놈인 거야. 어렸을 때 어른들이 뭐랬냐면 멀리서 돈 없는 놈이 오는 게 보이면 산도 빙 돌아간다 그랬어.”
동물농장의 살풍경 위에 포개지는 건 농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인부들의 삶이다. 인부 상당수는 이주노동자다. 이역만리 한국까지 건너온 이들은 온갖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과 어울리면서도 진득하게 한 농장에 오래 머물진 못했다. 한두 달만 버티다가 해고당하거나 도망치듯 농장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충남 강경의 한 자돈 농장에서는 사장에게 대들었다가 처참하게 쫓겨났다. 사장은 온갖 쌍욕을 내뱉었고, 그는 농장을 벗어나자마자 아이처럼 울었다. “나는 주차장 한가운데 주저앉아 의성어를 한가득 써야만 재현 가능한 그런 방식으로 울었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 때다.”
그렇다면 이 책이 전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식을 하자는 건 아니다. 책의 끄트머리에는 닭이나 돼지는 인간의 ‘식량’이니 어쩔 수 없지만, “미각의 쾌락을 위해 죽이는” 개라도 좀 덜 먹을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다음과 같다. “당장 모두가 채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식량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생물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인간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부터 고기가 되는 운명에서 구제하자는 주장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성석제나 박민규나 이기호나 김중혁 같은, 입담 좋은 소설가의 작품이 떠오를 수도 있을 듯하다. 예컨대 저자는 개 농장의 고약한 악취를 묘사하면서 “만약 그런 냄새를 전쟁터에서 맡았다면 적군이 제네바 협약을 어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병아리를 빼낸 뒤 부화장 풍경을 전할 땐 “아사 직전의 대대 병력이 삶은 달걀로 폭식을 하고 떠난 것처럼 변해 있었다”고 썼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은 뒤 어제 저녁 먹은 삼겹살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문장들에서 쿰쿰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책상머리나 지키면서 음풍농월하는 백면서생들은 결코 쓸 수 없는 빼어난 작품이다. ‘올해의 책’ 후보작으로 추켜세워도 손색없는 신간일 듯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