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보면 이렇다. ‘오이나물이 외로워 보여서’ ‘그리운 설날 떡국’ ‘오믈렛의 비밀’ ‘카르페 디엠, 해삼탕’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기찬 효능’…. 앞부분 내용은 이런 식이다. “당근은 큐브 모양으로 썰되 한 변이 영점오 센티 못 되게 하는 게 적당하다. 당연히 양파는 좀 더 크게 썰어둔다. …버섯은 좀 두툼하게 썰어두는 게 식감이 좋다.”
요리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다. 책은 부엌일에 젬병이었던 인문학자 강창래가 갑자기 음식을 만들게 되면서 요리 순서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 데서 시작된다. 출간을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라 기억을 위해 기록한 결과물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50년 넘게 할 줄 아는 요리라곤 라면뿐이던 저자가 부엌에 들어가 서툰 칼질을 하고 돌아서면 잊는 요리 순서를 계속해서 되새기게 된 것은 왜일까.
“우연히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조금 보았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왜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두려 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어 영원히 남겨두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요리의 순서, 음식을 만들면서 떠오른 생각, 고수들에겐 하찮지만 초보에겐 중요한 정보들을 자세하게 적어낸 글들은 담백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글쓴이의 마음에 깊이 박혀 있는 슬픔이 완전히 감춰지진 않았다. 절제돼 있고 우아하지만 슬픔이 곳곳에 스며있다.
아픈 아내와 보낸 마지막 시간들을 기록한 책이라 그렇다. 아내와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고, 아내와의 마지막을 영원히 붙들어 두려는 몸부림이기도 해서 그렇다. 너무 아픈 사람 앞에선 애써 밝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슬픔이 깊으면 빠져들지 않으려고 애쓰게 된다. 그래서 슬픔을 절절하게 드러내지 않았는데 오히려 읽는 사람이 대신 엉엉 울고 싶어진다.
이 책은 아내가 그에게 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살 건지 알고 싶어.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시작해. 이제 더 이상 거칠 게 없을 테니까. 죽기 전에 당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건지 분명한 그림을 보고 싶어.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줘.” 그의 아내는 분명 행복했을 것 같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