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왁자하게 시작된다. 이스라엘 작은 마을의 한 클럽. 익살스럽게 등장하는 이 사람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발레다. 책은 도발레의 2시간짜리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관찰한 기록이다.

도발레의 움직임, 표정, 숨을 돌리는 짧은 순간, 빠르게 움직이는 시선까지 상세하고 정확한 묘사가 이어진다. 클럽 한 구석에 앉아서 코미디를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숨죽이게 되고 기대하게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순간을 세세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사람은 도발레의 옛 친구 아비샤이다. 너무 신랄해서 일찍 은퇴를 해야 했던 전직 판사인 그는 40여년 만에 도발레에게 연락을 받는다. 자신의 쇼를 지켜봐 달라고, 어땠는지 “봐주지 말고” 소감을 말해 달라고. 거절을 거듭하던 그가 결국 승낙한 건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에게서 제어 불가능하게 그냥 흘러나오는 거 있잖아. 세상에서 오직 이 한 사람만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그거.”

책은 바로 ‘그거’에 대한 이야기다. “개성의 광채, 내적인 빛, 아니면 내적인 어둠. 비밀, 진동처럼 전해지는 고유성. 어떤 사람을 묘사하는 말 너머,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그 사람에게서 잘못되고 뒤틀린 것들 너머에 놓인 모든 것. …내 앞에 선 모든 사람에게서 찾겠다고 맹세했던 것. 절대 무관심하지 않겠다고.”

아비샤이는 도발레의 ‘그것’을 놓치지 않고 관찰해내고 독자들을 도발레의 ‘그것’으로 끌어들인다. 관찰을 따라가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누군가의 고통, 비밀, 내적인 어둠까지 좇아가는 건 마음을 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주지 않고선 “애정이 담긴 목격자의 눈”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짧지만 휙휙 읽히는 책은 아니다. 도발레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비샤이가 읽어낸 도발레의 표정은 뭘 의미하는 걸까. 촘촘하게 배치된 의미를 파악하고 상황을 분석하면서 읽게 된다. 한참을 읽어나가다 다시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곱씹게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그렇듯 책에도 블랙 코미디가 불쑥불쑥 등장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희비극이 교차된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비극을 말하다가 단숨에 희극으로 관객을 옮겨온다. 안도하고 한숨을 돌리자마자 순식간에 절망의 시간으로 끌려 들어간다. 정신없이 이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자기 내부의 원시적 요소와 이렇게 철저하게 융합된 사람과 마주했는데 무관심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뭔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뭔가에 사로잡혔다는 걸 막연하게 느끼며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지점에 와 있다.

지난해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이다. 저자인 다비드 그로스만은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이스라엘 현대문학의 거장이다.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 온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도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역사, 이스라엘 현실에 대한 풍자를 절묘하게 녹여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심사위원장인 닉 발리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감상주의를 완전히 배제한 채 슬픔의 여파를 조명해낸 소설이다. 작가적 기교의 뛰어난 예를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는 모든 문장이 의미 있고, 모든 단어가 중요하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