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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천상의 하모니를 만드는 손

김보미 연세대 교수가 26일 서울 강서구 월드비전합창단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합창단원들과 함께한 모습. 월드비전 제공


그에겐 ‘첫’ ‘최초’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5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에서 첫 여성 지휘자로 활약했다. 최근엔 국내 최초 어린이합창단인 월드비전 합창단의 첫 여성 지휘자로 선임됐다. 김보미(41) 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 얘기다.

부임 한 달을 맞은 김 교수를 26일 서울 강서구 월드비전합창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시원시원한 동작, 밝은 표정의 김 교수를 보니 단원들이 잘 따를 거 같았다.

“사실 어른보다 아이들 대하는 게 훨씬 쉬워요. 우리 애들은 감정표현에 솔직해요. 생각하는 부분이 얼굴에 다 드러나죠. 한국이나 외국 아이들 모두 똑같아요.”

그는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최대 무기로 칭찬과 격려를 꼽았다. 빈소년합창단에서의 일화를 들려줬다.

“아프리카 출신 아빠와 오스트리아 태생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죠. 엄마도 일하다 보니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아주 개구쟁이였어요. 대화보단 손이 먼저 나가고 말도 거칠고, 처음 합창단에 들어와 ‘우당탕탕’ 말썽만 일으켰죠. 그런데 1년쯤 지나니 이 아이가 동글동글하게 바뀌었어요. 합창단에서 예절교육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말썽꾸러기였지만, 노래만 부르면 아름다운 미성의 하이톤에 모두 빠져들었어요. ‘너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어. 네가 노래하면 너 자신뿐 아니라 듣는 우리도 즐겁단다’라고 얼마나 칭찬했는지 몰라요. 아이의 좋은 점을 보려고 계속 노력했죠.” 어린이합창단을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지휘자 모습이었다.

김 교수는 창단 60주년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월드비전합창단을 맡게 됐다. 올해 굵직한 행사들이 이미 예정돼 있다. 올여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연주회를 열면서 2부작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이때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한 공연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시리아 난민촌을 찾아가 위로의 노래를 부른다. 이에 앞서 6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해외연주 기념연주회를 갖는다.

김 교수는 “어린이합창단으론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월드비전합창단에 합류해 솔직히 기쁘기도 하고 설레지만 한편에선 ‘그 전통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룩한 부담’에 대해 전했다.

“월드비전합창단은 그동안 제가 함께해온 여러 합창단과는 성격이 달라요. 우린 가슴을 울리는 합창단이 돼야 합니다. 예쁘게 걸어 나와 노래를 잘 부르고 안무를 딱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사명은 노래로 메시지를 전해 사람들의 마음을 터치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단원들이 노랫말을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불러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이심전심(以心傳心). 그런데 어린 단원들은 이미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합창단원 40명 중엔 경기도 남양주, 화성, 분당에서 서울 강서구 연습실까지 2시간 넘게 대중교통으로 일주일에 세 번 연습하러 오는 아이들이 있다. 단원들 스스로 찬양예배를 드리고, 연습 전에 기도 모임을 갖는다. 선배는 어린 후배들을 잘 챙겼다. 신앙의 힘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 찬양대에서 봉사하며 교회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부모의 반대로 세종대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 결국 3학기 만에 자퇴했고, 연세대 교회음악과에 입학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나 레겐스부르크 음악대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교회음악 최고과정을 마쳤다. 그의 인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합창음악으로 온통 채워져 있다.

김 교수는 합창단을 작은 사회에 비유했다. “합창을 통해 우리는 남을 인정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이, 어른 상관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합창단은 작은 사회입니다. 합창할 때 하모니가 중요해요. 남의 소리를 듣지 않고는 화음을 맞출 수 없어요. 좋은 합창단원은 남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입니다. 또 좋은 지휘자는 합창단원들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손으로 젓는 지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먼저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합창할 때뿐 아니라 학교나 가정,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때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요.”

월드비전합창단은 노래로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1960년 고아원 여자 어린이 36명, 남자 어린이 7명을 모아 창단했다. 78년 영국 BBC 주최 세계합창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매년 해외 연주를 다니며 문화외교 사절단으로 활동했다. 소프라노 홍혜경 강혜정,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이동규 등을 배출했다.

김 교수는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은혜스럽지 않은 구절이 없다”며 “그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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