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옷차림은 평소의 틀에 박힌 인민복이었지만 언행은 그렇지 않았다. 국경을 넘자마자 남북이 사전에 합의한 행사내용에 없는 깜짝 제안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쪽으로 오셨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김 위원장은 “지금 넘어가 보자”며 즉석에서 손을 이끌었다. 김 위원장은 또 문 대통령이 “오늘 보여드린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하자 “초청해주면 언제든 청와대에 가겠다”고 말했다.
북한 리명수 군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이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한 것도 김 위원장의 사전 지시나 허락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꼿꼿장수’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북의 군통수권자에게 경례를 하거나 머리를 숙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 통념을 깨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 군의 정경두 합참의장은 김 위원장에게 거수경례를 하지 않고 악수만 했다. 김 위원장이 우리 의장대를 사열한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일부 여론을 의식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중국이 아닌 북한을 거쳐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고 하자 김 위원장이 북한의 교통시설 형편을 솔직하게 언급한 대목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평창 고속열차의 우수성을 거론하며 “우리는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 민망스러울 수 있다”고 ‘셀프디스’를 했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파격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당시 합의를 미루며 하루 더 머물고 가라고 갑자기 권유하는 바람에 노 대통령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는 갑자기 회담 개최를 하루 연기하기도 했다.
파격은 협상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협상력을 높이는 결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북한은 오랜 기간 동안 대외적인 협상력을 키워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측은 그동안 축적해온 협상 기술과 경험을 총동원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격과 여유를 보여준 것도 밑에서 치밀하게 준비해 준 것으로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이 두 회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문 대통령 대신 한반도 운전자 역할을 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다. 모습이야 어찌됐든 상관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길로 가기만 한다면.
신종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