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시민들은 일터와 학교, 거리 등에서 생중계 방송을 보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기원했다.
서울광장에선 오전 9시30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손을 마주잡은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보이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은주(42·여)씨는 “오랜 기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었고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다”며 “오늘 회담을 기점으로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조금씩 사라지길 기대한다. 너무 가슴이 벅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전선언 추진과 완전한 비핵화 실현, 정상회담 상시화, 이산가족 상봉 등을 담은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후에 분위기는 더욱 고무됐다.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선언에 시민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임정자(75·여)씨는 “전쟁을 겪은 세대로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부디 오늘의 약속이 잘 지켜져 다음세대는 절대로 군사적 위협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관심이 높았다. 생중계를 시청한 우에무라 다카시(59) 가톨릭대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기자 출신으로 1991년 8월 ‘일본 위안부 강제 동원은 사실이었다’는 기사를 써 위안부의 실체를 일본 사회에 처음 알렸다.
실향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특별한 기대를 걸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의 사무실에 모여 회담을 시청한 벽성군민회 회원 10여명은 방북의 길이 열리길 소망했다. 벽성군민회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8년 세웠다.
회담 시청 중에도 휴대전화에 저장된 벽성군 사진을 들여다보던 박청흠(82)씨는 “남북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성과”라며 “쉽지 않겠지만 실향민을 포함한 남한 국민들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 KTX 울산역 대합실에는 휴가 복귀를 앞둔 군인부터 70대 노인까지 모두들 들뜬 표정으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학원생 이모(26)씨는 “남북이 저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며 “통일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광주 화정중학교에서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를 지켜본 한 학생은 “남과 북이 한민족이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다”며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 러시아로 여행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 해강초등학교 학생들은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통일이라는 주제를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로 접하자 “악수했다”고 소리치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법무부는 오전 교화방송센터 ‘보라미방송’의 자체 방송을 일시 중단하고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를 긴급 편성해 방영했다. 전국 구치소·교도소의 수용자들은 오전 9시30분부터 30분간 각 수용실에 설치돼 있는 TV를 통해 이를 시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각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와 서울동부구치소에서도 남북 정상회담 모습이 생방송됐지만, 두 사람 모두 시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오전 방송 시간대에 독방에 있지 않았고 지난 몇 달 간 TV 전원 자체를 켜지 않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TV를 꺼둔 채 지냈다고 한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은 정상회담에 반감을 표했다. 이날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 20여명은 서울 덕수궁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남북 정상회담은 이적행위” “대국민 사기극”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사야 지호일 기자·전국종합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