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공동 발표하면서도 ‘비핵화’라는 말만은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연설 중 네 차례나 한반도 비핵화를 꺼낸 것과는 정반대였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비핵화 언급을 하기에는 아직 북한 내부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공개 육성으로 비핵화 언급을 한 것은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 연설이 유일하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만 밝혔다. 이 발언은 북한이 새로운 핵보유국으로서 기존 핵보유국들과 핵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 표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 한반도 대화 국면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비핵화 언급 역시 북한 관영 매체 보도나 공식 문건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우리 특사단 방북 당시 김 위원장이 한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발언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간접 전달됐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밝힌 비핵화 발언 역시 북한이 아닌 중국 매체 보도에만 적시돼 있다. 김 위원장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단 등 사실상의 핵 동결 조치를 선언한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 발언문에도 역시 비핵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언급을 북한 주민들만 모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주민 여론도 고려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연달아 실시하고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이 완수됐다고 주장하며 새 노선인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제시했다. 핵 개발로 미국과 대등한 강국으로 올라섰다고 내부 선동을 하던 중에 김 위원장이 갑자기 비핵화 발언을 꺼내면 주민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판문점 선언’에 따라 북한 내부적으로도 비핵화 관련 표현이 차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합의문에 이미 비핵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이상 북한이 이 부분만 빼놓고 주민들에게 공개하기도 어렵다. 북한은 앞으로 주민들에게 비핵화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 위원장 스스로 보다 전향적인 비핵화 발언을 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