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비핵화 일정과 조건 ‘北이 넘어선 안 될 선’ 등을 文 대통령이 설명했단 관측
金 위원장, 폼페이오 방북 때 나눴던 이야기 전했을 수도
북측서 난색을 표했던 일정
12시간에 달했던 남북 정상의 일정 중 발언의 일부도 공개되지 않은 것은 판문점 도보다리 끝에서 이뤄진 30분간의 ‘벤치 대화’(사진)가 유일하다.
전문가들은 벤치 대화를 남북 정상의 군사분계선 월경보다 더 극적인 장면으로 평가했다. 벤치 대화는 27일 정상회담 일정 중 배석자 없이 진행된 ‘단독 회담’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아 비핵화 관련 의견을 조율했거나 북·미 대화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설명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벤치 대화가 시작된 오후 4시42분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문에 대부분 합의하고 서명을 앞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선언문에 담지 못한 비공식 의견 조율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대화가 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 정상회담은 5월 말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의 징검다리 성격이 짙다.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평화 구상도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일종의 훈수를 뒀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이 미국의 비핵화 일정과 조건, ‘북한이 넘어선 안 될 선’ 등을 설명했다는 관측이다. 미국의 구체적인 복안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꾸로 김 위원장이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나눴던 얘기를 문 대통령에게 전했을 수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9일 “문 대통령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설명하며 김 위원장의 결단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설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은 시간은 30분에 달했다. 문 대통령이 손동작을 하며 한참을 말하면 김 위원장이 그에 답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여러 번 포착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벤치 대화 내용에 대해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벤치 대화는 뒤늦게 확정된 일정으로, 음성 지원 없이 화면만 생중계됐다. 대화 초반 일부 카메라 기자가 자리를 뜨지 않자 김 위원장이 한 손으로 ‘물러나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도 생중계됐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의 이른바 ‘친교 산책’ 형식과 장소를 여러 차례 검토한 끝에 벤치 대화로 최종 결정했다. 직선으로 뻗어 있던 도보다리를 ‘T’ 자로 만든 뒤 벤치를 마련했다. 북측은 수행원이 없는 산책과 대화 일정에 매우 난색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면 벤치 대화의 비밀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의 대화가 제3국 등에 의해 감청됐을 가능성은 낮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평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정상 간 대화를 감청하기는 쉽지 않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화를 녹음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이를 차단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벤치 대화가 이뤄진 곳은 유엔군사령부 관할 구역으로, 이곳에선 유엔사 작전 통제를 받는 한국군 경비대대도 운용 중”이라며 “감청 장비가 투입되기는 어려운 조건”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