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 개혁·개방으로 가지 않을 이유 없다”

김동길 중국 베이징대 역사학과 교수가 29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최근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임기 안에 체제 보장과 핵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어 한다”면서 “평화협정에 이어 북·미 수교까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구체적 비핵화 방법은 北·美 대화 통해 찾아야
종전선언 되면 평화협정·수교 패키지로 가능
남북한이 뭉치면 주변국들은 따라오게 된다


'김정은은 정말 핵을 포기할까' '진짜 개혁·개방을 실천할 의지는 있을까'. 중국 베이징대 역사학과 김동길(56)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해 "체제에 대한 안전만 보장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개혁·개방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잘살게 되면 김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북·미가 의지만 있다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북·미 수교까지 순식간에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김 교수를 29일 베이징대 역사학과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을 내놨다. 어떻게 평가하나.

“남북한이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 선언문 내용이 명확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첫삽을 뜬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이 없느냐는 비판이 나오는데 그건 남북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 핵 개발의 근본적 이유는 미국의 위협이다. 핵 문제는 북·미 간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국제적인 인식이다. 한국은 위협을 받는 당사자이지만 해결의 당사자는 아니라는 게 딜레마다. 그래서 남북한이 만나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선언문에 담았는데 이걸 트집잡아선 안 된다. 체제 안전만 보장된다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을 선언문에 넣은 것은 엄청난 성과다. 구체적인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하면 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고 보나.

“노태우정부 때인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선언 당시 그대로 했으면 북한은 비핵화하고 국제사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하면 무너질 것으로 보고 이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무효화시켰다. 북한도 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사실 비핵화 논의 과정을 보면 미국과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도 크다. 최근 김 위원장은 개혁·개방을 해서 빨리 국제사회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포괄적인 타결을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판문점 선언은 다시는 전쟁을 안 한다는 전쟁 포기 선언이고, 완벽한 비핵화도 이루겠다는 것으로 최선의 결과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지는 확고한가.

“어느 나라 지도자가 자기 국민들 고생시키고 싶겠나. 북한은 과거 리비아와 이라크 사태를 보고 핵을 포기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90년대에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면 망하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김 위원장 초기에도 그랬다. 지금 북한은 핵을 개발했다고 선포했고, 미국과 일대일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 과거 김정일이 김 위원장에게 정권을 넘길 때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며 연 50만t 규모의 흥남 비료공장을 건설했다. 비료 1t은 쌀 3t을 증산하는 효과가 있다. 쌀 150만t이 증산되면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과거엔 4∼5월만 되면 굶주림 때문에 비료를 달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요구가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북한 경제가 나아졌다. 북한이 핵 폐기를 통해 북한 인민들의 삶이 좋아진다면 김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개혁·개방이 체제 위협 요소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를 더욱 안전하고 영속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개혁·개방이 김정은 체제에 위협이라는 우려는 없을까.

“개혁·개방 시 체제전복 세력이 발흥할 것이란 두려움도 있을 수 있는데 그건 김정일 정권 때까지라고 본다. 사실 과거 북한 정권은 햇볕정책이 제일 겁났다고 하더라. ‘남한이 잘사는데 우리는 못산다’는 불만이 터져나올까봐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 때는 다르다. 한국이나 미국과의 협상에서 얻는 게 많아야 몇 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전면 개방을 통해 공단이나 공장을 세우면 수백억 달러가 생기고, 국민소득 1만 달러는 금방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별 조건을 내걸지 않는 것이다. 자잘한 조건보다는 조기 개혁·개방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평화협정에 이어 북·미 수교까지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

“가능하다고 본다. 수교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은 전쟁 중인 국가와 수교할 수 없다. 한반도는 현재 정전 상태여서 종전선언을 하고 이를 법적으로 완결짓는 평화협정까지 맺으면 수교의 전제조건이 갖춰진다. 미국과 수교를 먼저 하고 평화협정은 나중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수교 순으로 진행된다. 국가 승인은 종전선언만으로는 안 된다. 종전선언이 되면 평화협정과 수교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가능하다. 북한 입장에서 평화협정에 이어 수교까지 이뤄진다면 단계적 보상 등 전제조건도 필요 없게 된다. 김 위원장은 평화협정이나 핵 폐기 조건으로 아무것도 내걸지 않아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아주 고차원적인 외교전략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실험장 폐쇄 장면도 공개하겠다고 했다.

“비핵화는 이미 가진 핵을 포기하기 전에 먼저 핵 동결을 해야 한다. 미래의 핵 능력을 알 수 있는 게 핵실험장이다. 핵실험장 폐기는 핵 동결을 의미한다. 지난해만 해도 대북 대화재개 조건이 핵 동결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핵을 동결하는 걸 확실하게 불가역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일단 북한을 의심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은 정상 국가가 된다. 이는 곧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을 의미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기존 약속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걱정한다. 그래서 지금 환경이 좋을 때 트럼프 대통령 임기 안에 체제 보장과 핵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어 한다. 북한이 앞으로 7∼8년 또는 10년 정도만 정상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교류를 한다면 굉장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방식이 체제 안전 보장을 받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 김 위원장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보고를 받았을 때 이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혜안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문 대통령도 말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이끌어내는 걸 보면 간단치 않다. 지금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의기투합한 상황이다. 남북한이 뭉치면 주변국들은 따라오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친북인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김 위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또 북한에서 가장 개혁적인 사람이 김 위원장이다. 북한은 2009년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박남기 노동당 재정부장을 총살했다. 이후 어떤 건의나 정책 개발도 사라졌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정책을 중앙에서 결정하면 실패 책임을 묻지 않고 성공하면 큰 보상을 하는 쪽으로 바꿨다. 이후 북한에서 좋은 정책 제안이 물밀듯 쏟아졌다. 지금 개혁·개방 분위기는 김 위원장이 끌고 가고 있다.”

■ 김동길 교수는
'마오쩌둥, 북한군 남침 반대' 외교전문 찾아내 2010년 공개


김동길 교수는 2010년 마오쩌둥이 북한군의 남침을 반대한 사실을 보여주는 외교전문을 찾아 공개했다. 스탈린은 1949년 마오쩌둥에게 "우리는 당신의 의견(남침 반대)에 동의한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에 고무돼 일어났다는 학계 일부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자료였다. 김 교수는 이후에도 한국전쟁 관련 자료들을 잇따라 발굴해 사실에 근거한 논리를 펴는 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김 교수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7년 베이징대 최초로 한국인 역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근현대 동북아 국제관계사와 중·소 관계사, 북·중 관계사 및 한국전쟁을 연구해 왔다.

지난 2월에는 중국의 '종신교수'격인 창핑교수(長聘敎授) 자리에 올랐다.

베이징=글·사진 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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