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식·이란식 절충 형태… 볼턴, 리비아 모델 거론하며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 있다”
단계별로 보상 제공하되 이행시기 못박기 쟁점될 듯
조만간 이뤄질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화될 북한식 비핵화의 핵심은 ‘속도’다. 핵 포기 선언부터 실제 폐기까지 1년10개월 만에 끝낸 리비아식 해법과 이란에 적용된 엄격한 검증 절차를 절충한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다른 나라의 핵 폐기 사례가 북한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북한식 비핵화 모델을 만드는 데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9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리비아 모델을 재차 거론하면서도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북한에 적용 가능한 제3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식 해법은 트럼프 행정부가 선호하는 방식이지만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리비아는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핵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미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은 현재 20∼30개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완성되지 않은 핵 프로그램을 갖고 선제적 핵 포기를 발표한 리비아와 북한은 협상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30일 “미국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난 뒤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이런 방식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비핵화 로드맵을 일괄 타결한 뒤 단계적으로 이행할 때의 관건은 신고부터 폐기까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라며 “이행 시한을 정하고 각 단계마다 북한에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북·미가 찾을 수 있는 최대 접점”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가 ‘핵 폐기 전 보상은 없다’는 미국과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하는 북한을 함께 설득할 수 있는 카드란 얘기다.
리비아는 카다피 정권이 핵 포기 의사를 밝히고 관련 시설과 장비를 미국으로 이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거쳐 폐기 절차가 최종 완료되기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볼턴 보좌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 표명 이후에도 리비아식 해법을 언급한 건 비핵화 이행 절차를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핵물질과 핵시설, 핵무기 신고부터 폐기까지 최대한 절차를 압축하면 6개월에 끝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장 최근 핵을 포기한 이란식 해법은 엄격한 검증이 특징이다. 이란은 2013년부터 미국과 비밀 협상을 전개, 2015년 7월 주요 6개국(P6)과 핵 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타결했다. 이란이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조항이 포함돼 과거 비핵화 사례 중 검증 규정이 가장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핵 문제는 과거 사례보다 한층 까다롭고 복잡하다”며 “리비아의 일괄타결·단기간 해결 방식과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해체 방식이 접목된다면 최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식 핵 폐기는 ‘협력적 위협 감소’(CTR)로 불린다. 구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전략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물려받은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국 러시아와 안전보장 각서(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로 반출해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핵 해체 및 핵 대체연료 비용과 핵 과학자들의 직종 전환을 지원했다.
권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