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정상선언’에도 포함 이후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해상 기준선 설정 문제 때문
北 ‘서해 NLL’ 용어 사용… 평화수역 현실화 기대감
이달 장성급 군사회담 주목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에 담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화’는 2007년 ‘10·4 정상선언’에도 포함됐던 내용이다. 이 합의가 여러 차례 추진되다 동력을 잃은 이유는 평화수역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해상 기준선 설정 문제 때문이었다. 북한은 과거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상당히 내려온 ‘서해 해상분계선’을 기준선으로 제시해 왔다. 이번 합의 이행 여부는 남북이 결국 ‘NLL 뇌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평화수역 합의는 화약고인 NLL 일대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 군사적 긴장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이는 문재인정부 국정 과제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과 맞물려 있다. 특히 이번 합의는 과거와 달리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판문점 선언 전문을 게재하며 자신들이 쓰는 해상분계선 대신 북방한계선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썼다. 군 소식통은 1일 “노동신문 보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이 NLL을 기준선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판문점 선언문 제1조 6항은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간다’고 돼 있다. 이 역시 평화수역 현실화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정상선언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구상은 모두 NLL을 기준선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 이후 펴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NLL상에 남북 등거리 또는 등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은 NLL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평화를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썼다.
다만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앞으로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제안은 북측이 더 넓은 공동어로구역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면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NLL 무력화 시도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촉발된 ‘NLL 포기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이 평화수역 논의보다 먼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 장관과 북한 인민무력상, 합참의장과 북한군 총참모장을 각각 연결하는 직통전화 개설뿐 아니라 서해 NLL을 마주보고 있는 남북 군 지휘관 간 ‘서해 핫라인’을 개통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남북은 2004년 6월 4일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이미 ‘쌍방은 서해 해상에서 쌍방 함정(함선)이 서로 대치하는 것을 방지하고 상호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국제상선공통망을 활용한다’고 합의한 적도 있다. 황해도 남부에 있는 해주와 인천을 오가는 직항로 개설을 위한 군사적 지원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이 서해 핫라인과 직항로 개설 등 우발 충돌방지 조치들부터 하나씩 논의하고 이행해나가면서 신뢰를 쌓다보면 NLL 문제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 부문 합의는 5월로 예정된 장성급 군사회담을 시작으로 논의에 들어간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원으로 참여한 이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과 악수를 나누며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군 관계자는 “앞으로 군사회담에서 자주 만날 수 있으니 서로 얼굴을 익히는 차원에서 인사를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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