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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인류세’를 지키는 사람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지난 2월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는 북극곰의 ‘사냥터’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USGS는 “북극곰은 매년 봄이면 겨우내 얼었던 얼음 위를 돌아다니며 물개를 잡아먹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물개를 사냥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미국 알래스카주 뷰포트해 얼음 위에 앉아 있는 북극곰. AP뉴시스




책을 읽는 내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지구의 지붕’인 네팔 히말라야부터 아메리카 대륙 끄트머리에 있는 칠레 파타고니아까지, 저자와 동행하며 지구촌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는 지역들이었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이렇듯 글에서 묻어나는 현장감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인류세의 모험’은 영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가이아 빈스가 2014년 펴낸 책으로 국내엔 최근에서야 번역·출간됐다. 그는 네팔 칠레 케냐 라오스 등지를 돌아다니며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지난한 싸움의 현장을 취재했다. 저자가 이런 책을 구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런던에 있는 내 책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과학자들이 생산한 추상적인 숫자와 그래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 행성을 탐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류세의 모험’을 소개하려면 제목에 등장한 ‘인류세’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인류세는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루첸이 세상에 퍼뜨린 말이다. 인간이 지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현재 인간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할 방향타를 쥐고 있다. 인류는 세계 담수의 4분의 3을 통제하고, 지표면의 10분의 4를 이용한다. 핵무기까지 지닌 인류는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운명을 결딴내버릴 수도 있다.

본문은 모두 10개의 챕터로 구성됐다. 저자의 시선은 대기 산 강 농경지 바다 사막 사바나 숲 암석 도시 순으로 향한다. 각 챕터를 시작할 때면 장구한 대기의 역사를, 산과 강 등의 역사를 하나씩 살피는데 문학적인 필치로 그려낸 문장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령 바다의 탄생을 묘사한 대목을 보자. “지구의 겉껍질이 만들어질 때 지구의 부글거리는 뱃속에서 최초의 물이 탄생했다. 화산 폭발로 뿜어져 나온 증기가 기온이 낮은 대기로 올라가 구름을 만들었고, 지구가 식으면서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렸던 것이다. 비는 수만년 동안 내렸다. 지표면의 저지대는 물에 잠겨 최초의 바다를 창조했다.”

뭉근한 감동을 선사하는 문장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이 책의 뼈대를 이루는 건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컨대 저자는 “가장 높은 산이 겨우 해발 2.3m”인 몰디브를 찾아가 이 나라 대통령이었던 모하메드 나시드를 만난다.

알려졌다시피 몰디브는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가 수몰될 위기에 처한 나라다. 나시드는 대통령 재임 당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역설하면서 화석 연료를 이용한 발전 설비를 없애는 도전에 나섰다. 2009년엔 장관들과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각료회의를 열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몰디브 국민들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시드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산업화된 세계는 지난 300년 동안 대기를 오염시켰다. 우리는 그 나라들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기후변화는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만명의 가정, 생계, 인생을 위협하는 인권 문제입니다.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저자는 볼리비아에서 아마존 밀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파타고니아에서 댐 건설을 막으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삶을 전한다. 세계의 불평등 문제나 연대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드는 내용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책을 읽으면 인간이 지구가 일군 자연이라는 곳간을 얼마나 함부로 헐어 쓰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해외의 수많은 매체들은 “중간에 내려놓기 힘든 책”이라고 평했는데 실제로 그렇다.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유려한 문장에 실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시종일관 호들갑만 떨진 않는다. 저자는 차분한 어조로 세계의 변화상을 전한 뒤 미래를 낙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껏 그래왔듯 인류가 어깨를 겯고 지금의 난맥상을 개선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다.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건 가상의 글이다. 화자는 저자의 아들인 키프. 키프는 2100년 어느 날 어머니가 펴낸 ‘인류세의 모험’을 읽으며 다사다난했던 21세기를 돌아본다. “(22세기 현재 지구촌에는)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고 평등한 새로운 사회가 탄생했다. …해마다 온실가스 배출부터 남획에 이르는 전 지구적 쟁점들에 대처하는 굵직한 협약이 맺어지고, 정부들은 앞다퉈 과감하고 빠른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인류는 성장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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