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주한미군, 철수 대신 평화유지 등 역할 변화 가능성





“평화체제 구축되면 떠나야” “철수=한·미 동맹 약화” 팽팽 北은 공식 입장 거론 안해
한반도 평화적 상황 관리나 ‘동북아 균형자’ 역할 찾으며 계속 주둔할 가능성 커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뜨거워지면서 주한미군 주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최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에 이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평화협정 체결 이후의 미군 주둔 변화 가능성을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직접 “주한미군은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될 경우 주한미군 역할 변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평화체제 구축 이후의 주한미군 역할은 ‘철수냐 주둔이냐’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 말하는 주한미군 철수론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된 만큼 평화체제 구축 이후엔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휴전 상태를 끝내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만큼 미군 주둔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문 특보가 “협정 체결 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한국 주둔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반면 미군 철수 반대론은 ‘북한 위협 소멸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평화협정은 불완전한 제도적·법적 장치일 뿐 한반도 평화를 완전히 보증하지는 못한다는 취지다. 평화협정 실패 사례는 1973년 미국과 북베트남이 맺은 파리 평화협정이 대표적이다. 북베트남군은 협정 체결 2년 뒤 미군이 철수한 남베트남을 침공했다. 여기에 보수진영은 ‘미군 철수=한·미동맹 약화’라는 시각이 강하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 이후의 미군 철수는 북한의 적화통일 로드맵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하지만 미군 주둔 문제를 단순히 찬반양론으로 결론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남북관계의 특수성뿐 아니라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한미군 주둔은 1954년 11월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 무력 위협을 받을 경우 공동대응한다는 게 조약의 골자다. 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공격 가능성 등 불안한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53년 8개 사단 32만5000여명 규모였다가 현재는 2만8500여명의 병력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규모는 줄어든 대신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전력 역시 강화됐다.

정작 북한은 과거 끊임없이 반복했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최근 공식적으로 꺼내지 않고 있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대화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카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군 주둔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 된 한반도 내 전략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미군 주둔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는 평화체제 구축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한미군은 평화유지 임무 또는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주한미군 주둔은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의 자국 영향력을 계속 유지·확대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할 수 있을 만큼의 국방력을 키우지 않는 한 미국의 국방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앞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만 증폭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앞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적인 상황 관리와 평화 유지는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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