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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51세기 지구인 리 무인 행성 표류기



소설의 배경은 우주비행장이 공항만큼이나 많아진 51세기다. 지구는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럭저럭 버텨왔고 태양계 너머의 먼 행성에서 이따금씩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소설은 오로지 휴양을 위해 개발된 행성 ‘플랜A’의 흥망성쇠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지구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행성 ‘플랜A’에 한 남자가 갇혀 있다. 한때 최고급 휴양 행성이었던 ‘플랜A’는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폐쇄됐다. 대외적으로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행성이지만 사실 이 행성엔 한 사람이 떠나지 못하고 있다. 행성 궤도를 따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행성대관람차’에 홀로 갇혀 있는 주인공 ‘리’다.

리는 어떻게 이 무인 행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성능이 매우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가 쉬지 않고 가동되고, 인공지능 컴퓨터가 계속해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자원도 풍부해서 리는 살아남았다. 고도의 기술 발전과 풍부한 자원이 그에게 생을 허락했지만 동시에 극한의 고독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가 인간에게 과연 축복인지를 곱씹게 된다.

리가 구심점이 되지만 책은 그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낸다. 리와 전화 체스를 두는 은퇴한 사업가 기무라 다로, 우연히 연결된 전화 통화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와 사랑에 빠진 통신판매원 도리스 브라운은 고독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외로움은 리의 고독보다 때때로 더 깊고 더 짙다. 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지내지만 우주에 홀로 남겨진 리보다 더 고립된 삶을 산다. 리는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들의 고독을 치유해준다.

암울한 시대 배경을 깔고 있지만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하게 이어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섬처럼 고독한 사람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농담을 주고받고, 삶의 처절한 순간들을 유머로 맞받아친다. 슬픔이 잔잔하게 음악처럼 흐르지만 읽으면서 내내 웃게 만든다. 소설가 김인숙의 표현을 빌자면 “사소한 인생, 태연한 일상을 그 무엇도 모욕하지 않는 유머”를 담아 끌고 나간다. 한마디로 재밌다.

5000만원 고료의 황산벌청년문학상 2018년도 수상작이다.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선정한 심사위원단(김인숙 이기호 류보선)은 “21세기형 이야기꾼의 탄생”이라고 저자를 평가했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지체할 수 없이 끌려들어 가다보면 이 평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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