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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자녀 아닌 ‘30년 간병인’에게 유산 상속한 80대 노인



자녀들 “치매 증상 부친 속여 재산 가로채” 소송 제기
법원, 치매 진단 前 증여 판단…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며 간병”
부양 대가로 소유권 이전 인정


80대 노인 A씨는 2014년 4월 30년 넘게 집안일을 해주고 자신을 간병한 B씨에게 서울 동대문구의 본인 소유 빌라 소유권을 넘겼다. B씨는 2억7000만원을 받고 빌라를 다른 이에게 팔았다. 빌라를 담보로 A씨가 빌렸던 6000여만원을 우선 갚은 뒤 남은 돈으로 인근의 다른 집을 샀다. A씨는 B씨 명의로 된 새 집에서 2년 동안 같이 살다가 2016년 8월 사망했다.

A씨의 아들 3명은 지난해 3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B씨가 치매를 앓던 부친을 속여 재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이었다. 매각대금 중 A씨 빚을 갚은 데 쓴 돈을 제외한 약 2억1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A씨가 무상으로 준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10대 후반이던 1980년 입주 가정부로 A씨 집에 들어가 A씨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 일까지 도왔다. A씨가 2012년 고관절 수술을 받고 거동이 힘들어진 뒤에는 간병은 물론 생계까지 사실상 책임졌다고 한다.

1년여 심리 끝에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판사 이원)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A씨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빌라를 준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다.

아들들은 재판 과정에서 부친이 중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4년 8월 실시한 간이 정신상태 검사에서 30점 만점에 15점을 받았는데, 이듬해 7월 검사에서는 10점으로 상태가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다. 부친이 과거 우울증 등으로 수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력도 내세웠다.

재판부는 그러나 A씨가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에 들어간 시기가 2014년 8월이라고 봤다. 빌라를 넘긴 지 4개월가량 지난 때다. 소유권 이전등기 업무를 담당한 법무사가 “당시 A씨는 치매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 동의가 있었다고 판단해 절차를 진행했다”고 진술한 부분도 감안됐다.

유족들은 B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형사 고소도 했지만 검찰은 “빌라를 증여받았다는 B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 역시 “B씨는 망인이 사망할 때까지 (36년간) 함께 거주하며 간병했다. 이런 부양의 대가로 소유권을 이전해줬다는 B씨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밝혔다. 또 “A씨가 치매 때문에 부동산 처분 관련 의미나 경과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씨 변호를 맡은 차미경 변호사는 “의뢰인은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돌봤고 할아버지도 진짜 가족으로 생각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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